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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75

오로라 공주 (2005) : 몰상식도 죄다 뚜렷한 공통점은 보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 그런데 피해자들이 불쌍해 보이진 않다. 사실 현실에서 이런 인간들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인간들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린 여자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계모. 돈 많은 유부남에게 들러붙어 사는 주제에 성질은 더럽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무례하고 거만한 젊은 여자.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고, 경찰서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졸부. 새벽부터 재수없게 여자 승객을 첫 손님으로 태우지 않는다는 택시 기사.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차는 왜 끌고 나왔냐고 욕설을 퍼부으며 지랄지랄 하는 양아치. 그리고 돈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는 변호사.. 그 덕(?) 에 6살 아이를 성폭행, 살인, 시체유기를 한 악질범은 정신병원에서 편히.. 2011. 1. 15.
영화 10억 (2009) : 무리한 반전 영화 시작부터 관객은 궁금하다. 사막에서 권총 자살을 하려는 남자는 누구일까? 왜 죽으려는 걸까? 구급차에 실려가는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겁에 질려있는 걸까? 10억이 걸린 이상한 서바이벌 게임 쇼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끝까지 관객들에게 장민철 PD (박희순) 가 왜 이런 무시무시한 판을 벌렸을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궁금증을 던지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대충 예상한다.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 돈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성, 자기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 그 와중에 육체를 탐하는 욕구. 뭐, 이런 걸 보여주려는 영화겠거니, 하고 말이다. 제목부터 그런 느낌을 주고,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는 결말이다. 여태껏 돈을 향.. 2010. 12. 30.
클로이 (Chloe, 2009) : 누구나 금지된 욕망을 상상한다 캐서린(줄리안 무어) 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자신은 초라해져만 가는데, 남편은 흰머리조차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로 멋진 미중년이 되가고, 아들은 자꾸만 자신을 밀쳐낸다. 이러한 소외감과 불안감은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고, 급기야 콜걸인 클로이를 이용해 남편을 시험하려 한다. 이제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과연 배우자를 의심하지 말라, 는 구태의연한 교훈이 이 영화의 주제일까? 그런 도덕적 교훈을 이야기하는 영화치고는 지나치게 관능적이지 않은가.. 자, 영화의 마지막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영화 후반부를 자세히 보면,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클로이가 2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설정부터 그렇다. 그것도 바닥은 콘크리트도 아닌 나무 덱이다. (뭐, 그 전에 떨어진.. 2010. 12. 20.
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영화 포스터는 완전 에러다. 영화에서 저 장면은 이사벨이 테오에게 "영원" 을 이야기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불안해 하는 장면이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들을 넌지시 비춘다고도 볼 수 있는 장면. 그런데 포스터에서는 마치 두 남자 사이에서 즐기는 듯한 표정이다. 게다가 누구나 상상했던 유희라는 문구까지 삽입되어가지고, 뭔가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실제 영화 내용과는 완전 동떨어진, 정말 맘에 안 드는 포스터. 포스터에 대한 불만은 여기까지하고, 이제 영화 얘기로.. "연립내각의 앞잡이 말로 장관은 시네마테크 원장인 앙리 랑글루아를 몰아내려 합니다." 랑글루아는 정부에 의해 해임됐고 파리의 모든 영화광들은 궐기에 나섰다. 그런 우리들만의 문화혁명이었다. 68혁명이 막 불붙기 시작하는 때. 파리에 .. 2010. 12. 5.
크랙 (Cracks, 2009) :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도발적인 아름다움과 넘치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기숙사 선생 미스 G.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desire) 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매혹적인 모험담을 들려준다. 세상과 고립된 기숙학교 여학생들에게 이런 미스 G는 미지의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아이돌 스타 같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피아마라는 여학생이 전학오면서 그녀들만의 아늑한 공간은 조금씩 금가기 시작한다. 눈부신 다이빙 실력, 풍부한 여행 경험, 무엇에도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을 지닌 피아마는 단번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을 끈다. 이런 피아마는 다른 학생들의 질투와 시기를 받으면서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고, 어느덧 그녀들 속에 스며든다. 이를 지켜보는 미스 쥐는 불안해하며, 피아나에게 집.. 2010. 11. 24.
애프터 라이프 (After Life, 2009)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은 궁금하다. 애나는 죽은 걸까? 살아 있는 걸까? 장의사는 사이코인가? 아니면 진짜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가? 하지만 사실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애나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애매한 장면들은주제 전달을 위한 고의적인 장치일 뿐이다. 단지 숨쉬고, 먹고 마시고 대소변 본다고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삶을 증명하는 것이 겨우 이 정도의 것들에 불과한가? 영화는 말한다. 삶이 두려워 겁을 먹고 움츠려 있기만 한다면, 상처받는 게 두려워 사랑을 밀쳐내기만 한다면,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그리고 몸은 살아있으되 정신은 이미 죽어버린 세상의 수많은 산송장들에게 경고한다. "어쩌면 당신은 오래 전에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2010. 11. 20.
더 도어 (The Door, 2009) 인간은 누구나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여행이라는 환타지에 매달린다. 영화 속 주인공 다비드 역시 그러하다. 옆집 여자와 놀아나는 사이, 딸아이는 수영장에서 익사해 죽고, 이후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하는 나날을 지내며 5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 길을 거닐다 시간을 문을 하나 발견한다. 그 문을 열고 터널을 지나니 놀랍게도 5년전 바로 그 순간에 다다른다. 당연히 그는 딸을 구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 했건만, 일은 생각치도 않게 꼬이고,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꽤 많은 영화들이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를 수정.. 2010. 11. 18.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 방관자들에게 끔찍한 야만이 벌어지는 이 섬에서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만종과 철종이라는 두 남자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해 주는 자들은 섬의 할머니들이다. 그녀들이 살던 시대에는 복남이 겪는 것 이상의 폭력과 차별이 그녀들에게 가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들 역시 약자다. 그런데 그녀들은 또다른 약자(복남) 를 학대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들의 생존방식이다. 폭력과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폭력하는 쪽에 가담하는 가장 치졸하고 비열한 방식.. 그리하여 자신 역시 강자라는 착각하는 우스꽝스러움.. 해서, 폭력을 자행하는 만종과 철종보다, 만종의 폭력을 두둔하고 되려 복남을 나무라는 이들이 더 끔찍하고 더 역겹다. 그렇다면 강자의 횡포에 동조하고 지지하고 두둔하는 이런 자기계급 배반형의 인간들.. 2010. 11. 17.
물 속의 칼 (1962) : 구세대 vs 신세대 운전하는 여자가 기어를 바꾸자 남자는 못마땅해한다. 여자의 운전 솜씨가 탐탁치 않다. 그리고는 그가 운전석에 앉는다. 한참을 달리던 중 히치 하이킹 하는 젊은 남자가 차를 가로막고, 중년 남자는 위협적으로 젊은 남자 코 앞까지 차를 바짝 몰고 가서는, 급하게 핸들을 꺾는다. 분명 멀리서부터 젊은 남자가 손 흔드는 걸 봤다. 그 전에 충분히 안전하게 차를 세우고도 남았다. 즉, 중년 남자는 젊은 남자에게 겁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젊은 남자에게 화를 내면서도 차에 태워준다. 게다가 자신의 1박 일정의 요트 여행에도 데려간다. 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싶은 중년남자의 심리다. 중년 남자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자동차, 요트, 그리고 여자.. 그와 여자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수직적.. 2010. 6. 21.
달려라 자전거 (2008) : 텁텁한 시대의 청춘 일제시대, 전쟁의 시대, 군부독재 시대.. 그 시대 청춘들은 독립을 소망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길 열망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극악스럽고, 때론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어쨌든 그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2000년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이 시대는 어떤 단어로 압축될까? 과거보다 잘 살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이 시대.. 그런데 왜 그 지지리 궁상맞던 과거보다 자살률은 2배가 넘는 걸까? 얻은 것이 분명 더 많은 시대인데,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 더욱더 답답한 것은 뭘 상실했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 애매모호한 시대, 밍숭맹숭하고 텁텁한 느낌의 시대, 밥 못 먹어 굶어 죽는 일은 없지만, 뭔지 모르는 무언가에 굶주린.. 2010.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