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소설

막심 고리키 <어머니, 1906>

by R.H. 2016. 10. 4.




"매일 변두리의 노동자 부락에서는 연기와 기름 냄새가 풍기는 공기 속에서 공장의 사이렌이 울린다." -본문 중-



칙칙한 하늘, 메케한 공기, 반복되는 노동, 지친 나날들. 짓밟히고 착취당하는 삶. 발길질 당하는 삶. 그들은 쌓여만 가는 분노를 해소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을 때리는 사람에게는 울분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들은 거리에서, 싸구려 술집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욕설을 하고 주먹질을 해대고, 집에 와서는 마누라를 두드려 팬다. 그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잔인한 삶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일생동안 나는 단 한 가지 것을 생각해왔네.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면 방해받지 않고 하루를 조용히 보낼 수 있을까, 눈에 띄지 않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네." -본문 중-



닐로브나가 바라는 것은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삶이건만.. 그녀는 언제나 불안에 떨며 가슴 졸이며 산다. 남편 비위를 맞추어 매질 당하지 않고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길 바랄 뿐이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는 아들이 남편과 비슷해지기 시작한다. 아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날부터 아들은 변하기 시작한다. 생각에 잠기고 진지해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동지라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토론을 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나 다 이웃 사람에게 얻어맞지나 않을까 하고 겁을 집어먹고, 게다가 자기가 먼저 뺨을 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거라구요, 어머니 !" -본문 중-



그들은 단결할 줄 모른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저항할 줄 모른다. 그저 애꿎은 동료나 가족들에게 비겁하게 화풀이할 뿐이다. 이런 잘못된 분노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저항해야 한다. 단결해야 한다. 닐로브나의 아들 파벨은 저항의 깃발을 들고 맨 앞에 선다. 노동자 모두를 위한 것이니 모든 노동자들이 지지할까. 아니다. 대부분의 그들은 불안해하고 겁을 먹는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공장에서 매달 불치의 병 수당을 받고 있는 다리가 없는 조시모프의 집 옆을 지나갈 때였다. 조시모프가 창문에서 목을 내밀고 고함을 쳤다. "파벨! 이 쌍놈의 자식, 그런 짓을 하다가는 얼마 못가서 네 놈은 목이 잘려 나갈 거야. 거기서 기다리지 못해!"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고 멈춰 섰다. 그 외침 소리는 그녀의 마음에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어머니가 그 불구자의 퉁퉁 부운 얼굴에 흘끗 눈을 보내자, 그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머리를 디밀었다. -본문 중-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까칠한 사람 덕분에 세상은 진보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저 두려움과 비겁함을 감추기 위한 신경질일까.. 메이데이에 행진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가장 거칠게 욕설을 퍼붓는 자는 다리가 없는 불구자다..



병원 문이 열리고 화환과 리본으로 장식을 한 관이 거리로 운구되어 나왔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모자를 벗었다. ..불그레한 얼굴에 새까만 수염을 무성하게 기른 키 큰 경찰 장교가 재빨리 군중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서 병사들이 함부로 사람들을 밀어대고 보도에 무거운 군화 발소리를 내면서 줄을 맞춰 걸어 들어왔다. 장교가 명령조의 씩씩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리본을 떼시오!"...."사람 장사도 못 지내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증오심은 더욱 고조되었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는 관뚜껑이 흔들렸으며 리본은 바람에 날려 사람들의 머리와 얼굴을 덮어씌우곤 했다...."리본을 떼라! 칼로 베어 버려!"...앞에서는 강탈당한 관뚜껑이 마구 짓밟힌 화환과 더불어 허공에 미끄러져 가고 있었고, 양 옆으로 말 탄 경찰들이 따르고 있었다.....사제도 없고 가슴을 저미는 노래도 없는 이 무언의 장례식, 생각에 깊이 잠긴 얼굴들, 그리고 찌푸린 눈썹들.. -본문 중-



사람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는 그들, 관에 장식된 리본조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들.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이것이 100년 전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파벨은 체포되고, 파벨의 어머니 닐로브나는 자연스럽게 아들의 동지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들이 하는 일에 처음에는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어머니는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모욕만 받으며 조마조마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삶이 외향적으로 크게 개선된 것은 없다. 아니 더 열악해졌다. 아들은 감옥에 있고, 아들의 친구들은 쫓기는 몸이며, 어머니는 유인물을 운반하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에서 이전과 같은 불안은 사라졌다. 삶은 생동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남편에게서 받은 매질에 제대로 반항조차 해보지 못했던 사실이 이제는 놀라울 지경이다. 이제 닐로브나는 반항하는 인간이 되었다. 저항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저항하는 인간만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누가 인간 대접을 하는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매질 당하는 그녀의 모습이 비참하고 굴욕적이기만 했던 것과 달리, 헌병에게 붙들려 매질 당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소리쳐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당당한 인간의 그것이다. 주위에서 흐느낌이 울릴지언정 그녀는 울지 않는다. 그녀의 영혼은 새롭게 태어났다. 그녀는 외친다. 되살아난 영혼은 죽일 수 없다고...



"오늘 내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모욕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겨 버린다면, 그 모욕을 가한 인간은 나에게서 힘을 시험해 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러 들 것입니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