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

엘리 파커 (Ellie Parker, 2005) : 초보자의 눈물

by R.H. 2009. 10. 31.

 

호주 출신 연기자 지망생인 엘리 파커의 할리우드 바닥에서 살아남기.. 아니, 할리우드 진입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다큐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

 

연기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할리우드 주변을 서성거리는 그녀. 오디션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성과는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하고자 하는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망나니 같은 남자 친구는 골치 덩어리일 뿐이다. 그녀가 이 망나니 같은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건 단지 혼자 있기 싫어서다. 그녀는 이 먼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지독하게 외로운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에 취해 미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처지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그녀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주류 백인에 속하고, 영어가 모국어니까..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결심하는 어린 학생들을 볼 때면,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성인, 백인, 그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엘리조차도 아웃사이더라고 느끼는데 말이다..)

 

숨이 막혀요. 이 도시가.. 하지만 내 삶의 시작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에요. 지금은 그저 앞으로 일어날 멋진 일들을 위한 리허설 같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내 삶을 시작하는 게 두려운지도 모르겠네요..  난 항상 아웃사이드에 있는 것 같아요.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하지만.. 항상 타인에게 평가 받는 입장이기에 나 자신이 되질 못해요.

그녀만이 아니다. 사회에 첫 걸음을 떼려는 세상 모든 초보자들의 처지 역시 그러하다. 언제나 타인의 평가를 받는 입장인 우리는 삶이 두렵다. 동시에 언젠가 다가 올 멋진 삶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을 둘러보는 순간 우리는 그녀처럼 한없이 울적하다. 할리우드 근방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멋진 꿈을 꾸고, 신나는 미래를 상상했겠지만,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당당하고 멋진 활약을 펼치는 자신을 꿈꾸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쩝..

 

꿈의 공장 할리우드

 

멀홀랜드 드라이브 리뷰에서 신데렐라, 슈퍼맨류의 멋진 상상을 만드는 전문 이야기꾼을 마약을 파는 꾼들이라고 말한바 있다.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우리의 욕망을 알아챈 그들은 현실을 잊게 해 줄 상상(이야기)을 만들어 판다. 그런 의미에서 꿈의 공장 할리우드는 마약 공장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도 이처럼 공허한 (실란시오) 것을 파는 할리우드의 모습을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엘리 파커가 오디션을 받는 마지막 장면, 술과 약에 취한 “그들” 앞에서 최선의 연기를 선보이는 엘리. 그녀는 상황에 맞는 드레스까지 갖춰 입고 최선을 다하지만,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들” 앞에서 그녀의 "최선" 은 되려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는 게 뭐 그렇지. 엘리는 이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뒷산에 올라 담배 한 개피 속에 피곤과 우울을 날려 버린다. 그리고 다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언젠가 그녀에게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꿈꾸며..

 

P.S. 이 영화는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메라는 주인공의 구질한 일상을 그저 보여 줄 뿐이다. 따라서 나오미 왓츠의 팬이거나, 독립영화에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이거 뭐냐??" 라는 소리 나올 영화. 본인은 그럭저럭 괜찮게 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