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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2008) : 피의 제물

by R.H. 2009. 10. 28.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 부분을 중심으로 한 리뷰임>

   

<The Midnight Meet Train> 이게 이 영화의 원제다. <한밤의 인육 열차> 뭐, 이런 식으로 한글 제목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무래도 meat과 meet가 비슷한 발음이어서.. 여하튼 제목처럼 이 영화는 잔인하다. 피범벅과 시체 난도질이 난무하므로 비위 약한 사람이 음식 먹으면서 보기는 좀 곤란한 영화.

 

레온은 도시의 “진짜” 모습을 찍고자 하는 사진 작가다. 알 수 없는 살인자의 뒤를 쫓으면서 그는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그가 본 도시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이 도시 지하에는 인류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괴물들이 살고 있는데, 새벽의 기차는 이 괴물들에게 인육을 던져 주어서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이처럼 괴물에게 소수의 인간을 제물로 던져 주는 이야기는 고대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심청전에서도 뱃사람들(집단) 이 바다 괴물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던져주지 않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미녀와 야수 역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가족(집단) 의 안녕을 위해 딸 아이 하나를 야수에게 던져 주는 것이니까. 한마디로 다수의 안위를 위해 소수를 제물로 바친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원시사회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인간이 모여 사는 모든 곳에는 스트레스가 생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 억제된 욕구, 피지배자의 열등감,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데서 오는 불만 등등.. 그래서 리더들은 집단 내에서 축적된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산 자를 제물로 바치고(카니발리즘 : 식인풍습), 남은 자들에게는 축제(카니발) 를 벌여 주었다. 마녀사냥, 잔인한 공개 처형 등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의 엔터테인먼트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영상물이 이것을 어느 정도 대체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점에서 좀 재미있는 듯. 전형적인 잔인함의 여흥을 주는 영화인데, 이러한 잔인함의 여흥을 비웃기도 한다고나 할까..)

 

시대가 흐르면서 그 형태만 조금씩 바뀔 뿐, 잔인함을 즐기는 여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집단내의 스트레스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폭동이고, 하극상이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대중에게 자극적인 여흥거리를 제공하여 대중의 스트레스와 불만을 다른 쪽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군인들의 약탈과 강간을 묵인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이처럼 집단의 “질서” 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피를 요구한 것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현상이다.

 

영화로 돌아와 보자. 여기서 도시는 집단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열차는 시스템, 기관사와 형사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자들, 살해된 희생자들은 위에서 말한 집단의 질서 유지를 위해 희생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괴물은 무엇일까?

 

심청전에서 뱃사람들이 실체가 없는 괴물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친 이유는 안도감을 얻기 위함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바다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면서 생기는 긴장과 욕구불만 등을 인간 제물 의식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인육의 축제(카니발리즘) 라는 집단 광기 속에서 인간은 자신 안에 들러붙어 있는 공포와 분노 같은 견디기 어려운 감정들을 해소한다. 참으로 인간이라는 집단은 무시무시하다. 두려움과 욕구 불만을 해소하고,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나와 같은 인간을 산 채로 바다에 던지는 흉폭한 마음.. 이러한 인간의 추한 감정들이 바로 괴물이다. 영화에서 잔인 무도하게 인간의 육신을 뜯어 먹는 시커먼 괴물은 바로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