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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캐서린 오플린<사라진 것들, 2007>

by R.H. 2017. 1. 17.

 




1984년, 샤핑센터 그린옥스에서 실종된 10세 소녀 케이트.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흐른 2004년, 그린옥스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커트의 눈에 한 소녀가 보인다. 왜 커트의 눈에만 20년전에 실종된 소녀가 보였을까. 부채의식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 1984년 케이트가 실종되던 날 우연히 케이트를 보았지만, 별거 아니겠거니 싶어서, 어쩌다보니, 어영부영하다가 목격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커트에게는 새해 결심이 하나 있었다. ..전부터 품어온 것이었다. 기억하기도 쉬웠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았으니까. 바로 이 일을 그만두고 그린옥스를 박차고 나가는 것... 결코 이 일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건만 십삼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도대체 그 세월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정말로 떠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언제나 무언가가 그의 뒤덜미를 붙들었다. 삶은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버렸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만사에 의욕도 야망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커트를, 그리고 우리를 시간 속에 붙들어 둔다. 꺼림칙한 삶, 질척거리는 삶에 발목잡혀 오랜 시간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른다. 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지..



"이 건물은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것 같아"



그리고 20년 사이에 사라진 것은 소녀만이 아니다. 지역 제조업은 쇠퇴하고, 공장이 있던 자리엔 거대한 샤핑센터 그린 옥스가 들어섰다. "진짜 남자니, 여자나 하는 일이니 하는 것에 너무 이상한 관념을 갖고" 있는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동네 가게들 역시 사라져간다. 이 거대한 쇼핑센터 그린옥스는 거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상징인 것이다.



이 화려한 쇼핑센터 뒷켠에 마련된 직원들의 공간은 비좁고, 허름하며, 인격을 모독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경비원과 CCTV로 중무장한 시스템은 사람은 감시하고, '물건' 은 지킨다. 이것이 이 쇼핑센터에만 한정된 이야기일까.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 이 도시 역시 물건들은 지키지만 ,무방비 상태에 놓인 노파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 도시는, 이 쇼핑센터는 사람과 일자리, 인격과 자존심을 사라지게 하는 블랙홀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만 같아서 지금은 한없이 그립기만 해요. 지금은 하루에 열두 시간이나 일하고 뇌는 점점 망가져가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음악도 전혀 듣질 않네요."



그런데 일개 경비원에 불과한 개빈은 자신과 그린옥스를 동일시한다. 시스템의 노예면서 시스템의 자랑스런 수호자를 자처하는 어리석은 자의 대변자가 바로 개빈이다. 시스템에 회의를 가지고 있고, 과거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커트와 대비된다. 



케이트가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은 단순 사고였다. 하지만 개빈은 그 소녀를 지하실에 남겨두고 매몰되게 고의적으로 방치한다. 중세시대에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 지하에 어린 아이를 매몰시키면, 그 건물이 무너지지않고 잘 올라간다고 믿었듯이, 개빈은 그 소녀의 희생으로 쇼핑센터는 더욱 발전했다고 광신하고 있다. 에밀레종에 어린아이를 희생시켰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저 크고 거대한 힘의 상징물들은 가장 어리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켜 만들어진 것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저 웅장한 중세의 건축물, 저 신비한 고대의 건축물들은 바로 희생당한 자들의 무덤이다. 우리가 멋지다 아름답다 신비하다라며 찬양하는 그것들은 가장 낮은 자들의 희생 속에 만들어진 위령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묻혀버린 아이들이 이 유럽 땅에 부와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 준 거예요."



쇼핑센터의 분신인 개빈의 저 마지막 말은 이 거대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한 우리 모두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자백이다. 



한줄 요약


"실종된 소녀" 에 대한 추리소설이라는 큰 틀 안에 겹겹이 다른 층을 쌓은 형태. 추리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그 틀 안에는 실업, 무너지는 골목상권, 저임금 노동자의 삶, 진실과 침묵 등을 꽉 채워넣었음. 유머는 양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