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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 르우벤과 쥬다

by R.H. 2009. 8. 15.

우유부단한 르우벤(Reuben)

제이콥의 첫째 아들 르우벤에 대한 묘사는 창세기에 별로 없다. 조셉 살해 모의 사건과 이집트로 벤자민을 송환하는 문제에서 잠시 언급될 뿐이다. 따라서 이 두 문제를 다루는 그의 태도와 르우벤에 대한 아버지 제이콥의 언급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상상해 보기로 한다. 



조셉 살해 모의 사건

형제들이 조셉을 죽이려 했을 때 르우벤은 이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형제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조셉을 외국에 노예로 팔자고 주동한 쥬다를 제지하지도 못했다. 이 사건을 통해 볼 때 르우벤은 다른 형제들을 설득하고 제압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르우벤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중하기는 하나 적극성과 결단력이 부족하고, 상대를 누르는 카리스마도 부족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우유부단한 성격의 사람들은 유혹에 약하고, 맺고 끝냄이 엉성하며, 감정의 동요가 심하다. 그가 아버지 첩과 동침(창세기 36장 22절) 한 사건은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창세기 49장에 아버지 제이콥은 르우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Reuben, you are my firstborn, my might, the first sign of my strength, excelling in honor, excelling in power. Turbulent as the waters, you will no longer excel, for you went up onto your father's bed, onto my couch and defiled it <르우벤, 너는 내 장자요, 내 힘이요, 내 능력의 시작으로, 신망과 권능이 탁월하다. (그러나) 물이 소용돌이 치는 듯한 너는 탁월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네가 아비의 침대에 올라 더렵혔기 때문이라>

르우벤은 신중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어서 주변의 신망(honor) 을 받기는 했지만, 딱부러지지 못한 성격의 사람이 가지는 결점, 즉 감정에 쉽게 휩쓸렸다. 그래서 제이콥은 르우벤의 나약함과 우유뷰단함을 "소용돌이 치는 물" 같다고 빗대어 표현했다.


 
벤자민 송환 문제

이집트만이 아니라 가나안에도 기근이 심해지자, 제이콥은 막내 아들 벤자민을 제외한 10명의 아들을 이집트로 보내, 곡식을 구해오게 한다. 이집트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조셉에 의해 스파이 혐의로 투옥되는데,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조셉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 제이콥의 막내아들 벤자민을 이집트로 데려오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시미온(Simeon) 을 인질로 잡혀둔 채, 나머지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돌아간다.

이 복잡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르우벤은 벤자민을 이집트로 보내자고 아버지 제이콥을 설득한다.(창세기 42장)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상대를 설득하는데 실패한다. 르우벤은 확실히 설득의 기술이 부족하고, 너무 무른 성격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매듭짓는 것은 셋째 아들 쥬다다.


웅크린 사자 쥬다(Judah)

"그 아이(벤자민)를 나와 함께 보내면 우리 모두 살고,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내가(쥬다) 그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내가 그를 만약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내 목숨을 걸고 모든 비난을 감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체하지 않았다면, 이집트에 두 번도 넘게 다녀왔을 것입니다." -창세기 43장 8절~10절

계속되는 기근으로 이집트에서 구해온 곡물은 바닥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셋째 아들 쥬다가 벤자민 문제에 대해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제이콥은 결국 벤자민을 이집트로 보내는 것을 허락한다. 르우벤이 설득할때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이번 경우는 곡식이 다 떨어졌다는 급한 상황이어서 제이콥이 벤자민을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는 르우벤을 보다 못한 쥬다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은 아닐까?

위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이럴 시간에 진즉 이집트에 다녀왔을 것이라는 쥬다의 단도직입적인 말을 되새겨 본다면, 이 문제로 상당히 오랜 시간 소모적인 논쟁을 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르우벤이 아버지를 계속 설득하려 했지만, 일이 지지부진하자 결국 셋째 아들 쥬다가 앞장선 것이다.

결국 벤자민과 함께 이집트로 간 제이콥의 아들들. 이번에 조셉은 벤자민을 도둑으로 몰아 그를 이집트에 붙잡아 두려한다. 예상치 못한 또다른 곤란한 상황이 닥치자, 이번에도 쥬다가 나선다.(이제는 아예 르우벤은 나서지도 않는다.) 창세기 44장 19절부터 34절까지는 쥬다가 조셉 앞에 나와 호소하는 장면이 상세히 적혀있는데, 이를 통해 추론해 보면, 쥬다는 상당히 논리적(이성)이면서도, 호소력(감성)있는 인물이었던 듯 하다.  

Judah, your brothers will praise you; your hand will be on the neck of your enemies; your father's sons will bow down to you.You are a lion's cub, O Judah; you return from the prey, my son. Like a lion he crouches and lies down, like a lioness?who dares to rouse him? <쥬다, 네 형제들은 너를 찬양할 것이다 ; 네 손은 적의 목덜미 위에 있을 것이며, 네 형제들은 네 앞에 엎드릴 것이다. 쥬다, 너는 사자 새끼로다.; 너는 적에게서 살아 돌아왔구나. 수사자처럼 웅크리고, 암사자처럼 엎드린 내 아들 쥬다. 누가 감히 그에게 덤비겠는가?> -창세기 49장-

창세기 49장에서 제이콥은 쥬다를 사자라고 묘사한다. 즉, 쥬다는 사자처럼 단도직입적이고, 직설적이며, 결단력 있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다른 형제들을 제압하는 능력이 있었고, 형제들은 이런 그를 신망했던 모양이다. 일전에 조셉 살해 모의에서, 형제들은 르우벤의 말은 듣지 않았지만, 쥬다의 말은 들었다는 점도 쥬다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다시말해 사자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쥬다를 따르는 형제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이콥은 쥬다를 묘사하는데 있어, 포효하는 사자가 아니라 웅크린 사자라고 표현했다. 쥬다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사려 깊은 인물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조셉 살해 모의 사건을 다시 보자. 조셉을 노예로 파는데 앞장선 인물이 바로 쥬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쥬다의 해결책이 조셉을 목숨을 구해준 것도 사실이다. 다른 형제들은 극단적으로 조셉의 피를 보고자 했고, 르우벤은 이를 원치 않은 가운데 중재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쥬다의 방안이었다. 쥬다의 해결책은 양측 모두에게 어느정도 받아들여질만한 절충안이었다. 물론 조셉 입장에서는 참 안된 일이지만..

또한, 벤자민 이집트 송환 문제에서도 르우벤이 먼저 아버지를 설득했다. 즉, 쥬다가 첫째 형인 르우벤을 제치고 나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장자인 르우벤의 권위와 입장을 상당히 배려하고 존중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형의 설득이 먹혀들어가지 않자, 보다못해 그가 나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제이콥은 쥬다를 엎드린 사자라고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를 어여삐 여겼는지, 제이콥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조셉에 버금가는 축복을 쥬다에게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