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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하 9장-권력의지

by R.H. 2016. 2. 6.





다윗은 승리하였다. 그의 이름은 대대손손 기억되고, 후세 사람들은 그의 용맹과 지혜를 칭송한다. 그러나 사울은 그저 미치광이로 기억될 뿐이다. 권좌에 집착하는 옹졸한 자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그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일까. 확실한 것은 다윗이 이겼고, 사울은 졌다. 그 뿐이다. 승패뒤에는 수많은 비열함, 잔인함, 교활함, 그리고 욕망이 드리워져있다. 이것들은 승자에게는 용맹과 지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고, 패자에게는 미치광이라는 추악한 오명으로 불리워진다. 승리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승자는 선, 패자는 악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것이다. 권력쟁탈전에 중간은 없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이다.



다윗과 사울은 모두 왕이 될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의 훤칠한 외모, 능력, 관용의 자세, 지혜로움. 그런데 무엇이 한 사람은 최후의 승자로, 한 사람은 치욕의 패자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권력의지(욕망)의 차이였다. 누구의 욕망이 더 강한가. 누가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가..



사울의 정계 데뷔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는 사무엘을 대면할 기회를 잡고서도 머뭇거린다. 사무엘같이 높으신 분을 만나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가냐는 변명거리도 마치 준비해놓은 냥 내놓는다. 어라, 근데 그를 수행하던 하인이 돈주머니를 턱하고 내놓는다. 주인님(사울의 아버지)이 비상금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사울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을 완벽히 꿰뚫고 있었던 듯하다. 사울이 결정적인 순간에 변명하며 뒷걸음칠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개중에는 능력은 출중한데 나서기를 꺼려하는 내성적인 능력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막상 일을 맡기면,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낸다. 사울이 바로 그런 특징을 지닌 인물이었던 듯 하다.



다윗의 정계 데뷔는 사울과는 정반대의 멘탈을 가진 다윗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은 골리앗을 때려눕히면 무슨 상을 받냐면서 전장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다. 이렇게 나대는 다윗이 어찌나 꼴비기 싫었는지 그의 형은 다윗에게 욕설에 가까운 폭언을 퍼붓는다. 하지만 다윗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형에게 주눅들지도 않고 쌩까버린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갈련다, 는 식이다. 욕망,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는 욕망,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는 욕망. 다윗은 분명 강력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욕망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왕위에 오르고도 기득권층의 인정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온갖 모욕과 수모를 인내하고 자신의 진짜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권력을 쟁취한다. 권력을 쥔 뒤에는 자신을 모욕한 자들을 포용하는 관대한 모습도 보여준다. 이랬던 그가 다윗이 등장하자 초조해하고 미친듯이 왕좌에 집착한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냥 내려오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평면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내려올 수 없다.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가 없다. 한번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에 내려오면 모두 다 죽는 것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가문, 벤자민지파.. 이런 파워게임의 절대 법칙을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사울은 처음부터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를 주저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끝에는 승리 혹은 패배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중간은 없다. 사울은 전장에서 자살한다. 그의 아들 요나단 역시 전사한다. 그의 딸 미갈은 모욕 속에 유폐되었으며, 그의 손자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의 모습으로, 죽은 개의 모습으로 다윗 앞에 엎드려 떨며 자비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멸문지화 속에 살아남은 무력한 왕족에게 '자비' 와 '동정' 이란 모욕과 조롱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