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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하 6장 - 미갈, 사랑을 저주하노라

by R.H. 2015. 1. 26.




"언약의 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 밖을 보다가, 다윗왕이 주 앞에서 뛰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를 경멸하였다" -사무엘하 6장 16절-


아버지와 형제들의 죽음, 무너져버린 집안, 사라진 왕국. 미갈에게 이제 남아있는 것은 증오와 절망, 그리고 다윗에 대한 경멸과 배신감 뿐이다. 이제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첫번째 아내인 미갈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다윗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빛나는 미소년이었다. 그러면도 손에 피를 묻히는 거친 사내였다. 그 용맹함, 당당함. 끝없이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굳센 실천 의지. 다윗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였던 것이다. 미갈 역시 다윗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다윗의 이런 두드러짐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사울은 딸 미갈의 감정을 이용한다.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는 척하면서,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블레셋인 표피 100개를 요구한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다윗의 군사적 성과를 모를리 없건만.. 다윗이 자신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상황 판단은 정확하지만, 다윗을 제거하려는 사울의 계획은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역시나.. 다윗은 블레셋인을 쳐죽이고, 사울의 요구를 충족시켜 미갈을 아내로 맞이한다.


이제 수세에 몰린 사울은 계획 따윈 세우지 않는다.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했던 날 밤. 사울은 부하들을 다윗의 거처로 보내 문을 지키게 하고, 다윗이 아침에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제거하려한다.


미갈이 다윗을 창문으로 내려 보내니, 다윗이 거기에서 달아나서, 목숨을 건졌다.  -사무엘상19장 12절-


헌데 미갈은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주고, 다윗을 탈출시킨다. 그러고는 침대 속에 인형을 만들어 넣어 

다윗이 아파 몸저 누웠다고 속인다. 다윗이 멀리 도망갈 시간까지 벌어준 것이다. 이처럼 미갈의 다윗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구구절절 드러나있다. 헌데 다윗의 미갈에 대한 감정은.. 뭐랄까 미갈이 싫지는 않지만, 열렬한 감정은 없어 보인다. 다윗이 요나단과 이별하는 그 긴박한 순간에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의 키스를 퍼부우며 온갖 요란을 떨던 것과는 달리, 미갈과의 이별 모습에서 눈물도, 키스도, 훗날을 기약하는 말도 없으니 말이다.


여튼, 이후에 사울은 미갈을 발디엘이라는 자에게 시집을 보내버린다. 이렇게 해서 끝나버린 미갈과 다윗의 관계. 헌데 다윗의 요상한 요구로 이들의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나의 아내 미갈을 돌려달라. 미갈은 내가 블레셋인의 포피 백 개의 댓가로 얻은 아내니라"  -사무엘하 3장 14절-


아브넬의 귀순 요청에 다윗은 뜬금없이 미갈을 요구한다. 헌데 미갈을 요구하는 다윗의 태도는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댓가를 치르고 얻은 물건을 되돌려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다윗은 당시 미갈이 다시 결혼을 했다는 것도, 그 결혼생활이 행복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갈의 남편 발디엘은 눈물을 흘리며 미갈을 따라올 수 있는 곳까지 따라나와, 수행원이 더이상은 안된다며, 억지로 떼놓을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하니,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들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헌데 그 행복을 부셔리고 억지로 미갈을 데려오겠다니.. 그것도 한때 다윗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사울 손에 죽을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탈출을 도와준 미갈이었다. 다윗의 태도와 요구는 지독하게 악랄한 것이고, 미갈에 대한 잔인한 배신행위다.


결국 사울의 왕국은 무너지고, 다윗은 승리한다. 언약의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면서 제사장의 권한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까지 하면서, 그는 모든 권력을 손안에 움켜쥔 것이다. 그리고 신이 나서 어쩔줄 모르고 날뛰고 춤추는 다윗을 맞이하는 미갈은 다윗의 행동이 천박하다고 힐난한다. 단지 날뛰며 춤추는 것만이 천박하다는 것이겠는가. 그녀의 말 속에는 뼈가 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사무엘하 6장 21절>


'너의 아버지와 집안은 몰락하고, 나는 승리하였다' 는 이 조롱같은 말을, 상처를 일부러 들추어내어 쑤시는 이 지독한 말을 미갈 앞에서 서슴없이 하는 다윗. 다윗을 사랑하고,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미갈에 대한 다윗의 응답은 조롱이었던 것이다. 


미갈의 이후 삶은 궁전 구석의 어느 보이지 않는 귀퉁이에 유폐된 삶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믿은 자신을 책망하고, 사울의 손에 다윗을 넘겨주지 않은 그 순간을 후회하면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윗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이루어지지 않을 후회 속에 유폐된 채, 절망을 끌어안고, 무력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 치욕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야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믿은 여자의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