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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크랙 (Cracks, 2009) :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by R.H. 2010. 11. 24.


<주의 결말 포함된 스포일러>

도발적인 아름다움과 넘치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기숙사 선생 미스 G.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desire) 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매혹적인 모험담을 들려준다. 세상과 고립된 기숙학교 여학생들에게 이런 미스 G는 미지의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아이돌 스타 같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피아마라는 여학생이 전학오면서 그녀들만의 아늑한 공간은 조금씩 금가기 시작한다. 눈부신 다이빙 실력, 풍부한 여행 경험, 무엇에도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을 지닌 피아마는 단번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을 끈다. 이런 피아마는 다른 학생들의 질투와 시기를 받으면서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고, 어느덧 그녀들 속에 스며든다. 이를 지켜보는 미스 쥐는 불안해하며, 피아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 고립된 기숙학교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미스 쥐다. 놀랍게도 미스 쥐는 세상을 경험해 본 적도 없다. 그녀가 들려주는 멋진 세계 여행담은 베스트셀러 책에서 슬쩍 가져온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가까운 타운에 나가 빵 한 덩어리 주문하는 것조차 두려워 할 정도로 심각한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다이빙 팀은 단 한 번도 외부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스 쥐의 실체를 들춰낸 사람은 바로 피아마다. 

누군가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동경은 사람의 눈을 왜곡한다. 반장 디는 분명 지난 밤의 사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도 그녀가 동경해 마지않는 미스 쥐의 말만 받아들인다. 피아나를 성추행한 건 분명 미스 쥐건만, 되려 피아나를 비난하고, 아이들을 선동하여 피아나를 궁지로 몰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눈가리고 귀가리운 채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그리고 이런 누군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벗어나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첫 단계다. 

소년이 자신의 어릴적 우상인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하듯, 이 소녀들은 자신들의 우상인 미스 쥐를 뛰어 넘어야 한다. 반장 디는 이것을 해낸다. 디는 제 입으로 진실을 밝히고, 미스 쥐에게서 등 돌리고는 제 발로 이 고립된 기숙사를 떠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게 될 세상이 미스 쥐의 입을 통해 전해진 동화 같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배워 나갈 것이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여 산산히 부서지는 파멸의 이야기다. 즉, 고립된 기숙사라는 아늑한 세계(알) 를 깨고(크랙) 나온다는 의미다. 마지막에 알을 깨고 나와, 세상으로의 날개 짓을 시작한 자는 디 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