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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욥기 4장 ~7장 : 엘리바스와 욥의 1차 논쟁

by R.H. 2018. 5. 12.



욥기 4장~5장 : 엘리바스의 훈장질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 내가 본 대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 <새번역> 욥기 4장 7절~8절



죄를 지었으니 고통(벌)을 받는다, 이 말은 맞다. 그런데 그 역(逆)도 성립할까? 그러니까 고통 받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 엘리바스의 기본 논리는 인과응보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고, 좋아하는 단어... 인/과/응/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처럼 잔인한 것도 없다. 고통을 벌의 개념으로 보는 건데.. 이 세상에 아무 죄 없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 전쟁 속에서 학살당하는 무고한 백성들, 기아에 허덕이는 무력한 아이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어느 날 사고로 물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엘리바스의 저 발언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무지막지하며, 악랄한지...



이 뿐만이 아니다. 엘리바스의 논리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이기도 하다, 니가 옷을 그렇게 입었으니까, 니가 조심하지 않았으니까, 니가 무슨 여지를 주었겠지, 너도 잘못한 게 있다, 맞을 짓을 했겠지, 욕먹을 짓을 했겠지... 왜 이렇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냐. 다 지난 일 아니냐. 왜 아직 까지 분노하느냐, 미련한 자는 자기 분노 때문에 죽는다(욥기 5장 2절) 이제 좀 그만해라. 언제까지 이럴 거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에게,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가해지는 이 더러운 말들... 피해자를 탓하는 이 지긋지긋한 말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당신의 종들까지도 믿지 않으시고, 천사들에게마저도 허물이 있다고 하시는데, 하물며, 흙으로 만든 몸을 입고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사람이겠느냐? <새번역> 욥기 4장 18절~19절



천사도 허물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니가 몰라서 그렇지. 너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을 것이다... 업보, 윤회, 다 비슷한 얘기다. 니는 모르지만, 니가 죄를 지었다는 것. 얼핏 맞는 소리 같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 받는 관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나중에 나오지만, 엘리바스의 인과응보론은 옳지 않다는 게 욥기 저자의 주장이다. 욥기 마지막에 가서 엘리바스는 하나님한테 혼남. (그나저나 논리고 뭐고를 다 떠나서, 고통 받으며 괴로워하는 친구한테 할 말임??)



어서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하는 이가 있겠느냐? 하늘에 있는 거룩한 이들 가운데서, 그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겠느냐?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 <새번역> 욥기 5장 1절~2절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욥을 꾸짖는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사람에게, 분노하는 사람에게 그만 화 내라고,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분노는 미련한 자의 것으로 너만 죽는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이지만, 패배주의를 심어주는 말이고, 정당한 분노를 조롱하는 말이다.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내 사정을 하나님께 털어놓겠다. 그분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하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하신다. <새번역> 욥기 5장 8절~9절


그래서 너는 집안이 두루 평안한 것을 볼 것이며, 가축 우리를 두루 살필 때마다 잃은 것이 없는 것을 볼 것이다. 또 자손도 많이 늘어나서, 땅에 풀같이 많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곡식단이 타작 마당으로 가듯이, 너도 장수를 누리다가 수명이 다 차면,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새번역> 욥기 5장 24절~26절



욥은 분노하고 울부짖지만, 신 앞에 엎드려 도와달라고 구원해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진 않는다. 신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고통을 호소하지만,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의 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라는 작자는 욥에게 하나님을 찾아가서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그냥 다 잊고 살다보면, 다시 잘 먹게 잘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런데 그냥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가, 이유 없이 당하는 고통, 부당한 고통을 그냥 잊어버리고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만인가...



6장 엘리바의 훈계에 대한 욥의 반론



누가 내 소망을 이루어 줄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무슨 기력이 있어서 더 견뎌 내겠으며, 얼마나 더 살겠다고, 더 버텨 내겠는가? 내 기력이 돌의 기력이라도 되느냐? 내 몸이 놋쇠라도 되느냐? 나를 도와줄 이도 없지 않으냐? 도움을 구하러 갈 곳도 없지 않으냐? 내가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든 말든, 내가 이러한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야말로,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 <새번역> 욥기 6장 8절~15절


 

욥은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다. 아무도 날 도와주지 못하고, 신조차 돕지 않는다는 저 절망에 가득 찬 말... 저절로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저절로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힘도, 버텨낼 힘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럴 때야말로, 타인의 위로가 필요할진대, 이 와중에 회초리 들고 훈장질 하면 빡쳐요 안 쳐요.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진 사람 앞에서 이 상황을, 이 결과를 받아들이라며 쿨 몽둥이 휘두르는 놈이 역겨워요 안 역겨워요. 얼핏 보면 엘리바의 훈계 질이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글 잘 쓴다는 소리 들을 사람이다. 말 잘 한다는 소리 들을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모든 것을 잃고 분노와 절망으로 울부짖고 있는 사람 앞에서 할 짓인가.. 



내가 너희더러 이거 내놓아라 저거 내놓아라 한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재산을 떼어서라도, 내 목숨 살려 달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아니면,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져 달라고 하길 했느냐, 폭군의 세력으로부터 나를 속량해 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했느냐? 어디, 알아듣게 말 좀 해 보아라. 내가 귀기울여 듣겠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바른 말은 힘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희는 정말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 <새번역> 욥기 6장 22절~25절



7장 : 허무와 우울에 시달리는 욥, 그리고 삶을 끝내버리고 싶은 갈망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책망질 하는 인간이 있을까? 있다. 우리는 보았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2차 가해자들을 우리는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경멸스러운 인간들을 본다. 상처 입은 사람을 향해 소금 뿌리는 인간들을 본다. 널부러진 사람에게 회초리질 하는 인간들을 본다. 아.. 이럴 때면 우리는 삶이 지긋지긋해진다. 허무해진다. 우울이 몰려온다.. 삶을 이제 그만 끝내버리고 싶다.. 욥 역시 그러하다.



인생이 땅 위에서 산다는 것이, 고된 종살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의 평생이 품꾼의 나날과 같지 않으냐? 저물기를 몹시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수고한 삯을 애타게 바라는 품꾼과도 같다. 내가 바로 그렇게 여러 달을 허탈 속에 보냈다. 괴로운 밤은 꼬리를 물고 이어 갔다.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내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지나가니,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는구나. <새번역> 욥기 7장 1절~6절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 나날이 허무할 따름입니다. <새번역> 욥기 7장 15절~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