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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오로라 공주 (2005) : 몰상식도 죄다

by R.H. 2011. 1. 15.



<주의! 결말 포함된 스포일러>

뚜렷한 공통점은 보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 그런데 피해자들이 불쌍해 보이진 않다. 사실 현실에서 이런 인간들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인간들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린 여자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계모. 돈 많은 유부남에게 들러붙어 사는 주제에 성질은 더럽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무례하고 거만한 젊은 여자.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고, 경찰서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졸부. 새벽부터 재수없게 여자 승객을 첫 손님으로 태우지 않는다는 택시 기사.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차는 왜 끌고 나왔냐고 욕설을 퍼부으며 지랄지랄 하는 양아치. 그리고 돈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는 변호사.. 그 덕(?) 에 6살 아이를 성폭행, 살인, 시체유기를 한 악질범은 정신병원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 정작 피해자 가족은 끔찍한 기억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들 모두는 정순정(엄정화) 의 딸 사건에 미미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미하게" 라는 점이다. 정순정이 죽인 자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인간들이다. 이들은 분명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은 인간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잔인하게 살해 당해 마땅한가, 라는 질문에는 망설이게 된다. 화딱지 나는 인간들인 건 맞긴 한데, 죽음으로 죄를 물을 정도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 에서는 이런 망설임과 주저함이 전혀 없다. 일말의 인정도, 용서도 없다. 왜 몰상식하고 어이없는 자들을 계속 참아줘야 하는가. 그런 인간들은 참아준다고 해서 누가 상이라도 주는가. 그 때 그때 분출되지 못한 정당한 분노는 도리어 재앙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런 어이없는 인간들이 모인 사회에서 어이없는 판결이 나오는 게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근데 씨X 왜 남의 얘기 같냐.."


견디기 힘든 사건을 겪으면, 대부분의 우리는 잊으려 노력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느냐는 논리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패배주의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왜 불의한 사건,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받고 참아야 하는가. 이게 인내 할 일인가. 이게 잊어야 할 일인가. 비겁하게 도망 가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는 딸아이 사건 파일을 다시 들추면서 남의 얘기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순정 사건 이후, 오성호(문성근) 는 더이상 종교 속에 숨지 않기로 결심한다. 정순정이 마지막에 처치하지 못한 변호사를 뒤쫓아 가는 오성호. 그는 과연 그 변호사만 죽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이없는 판결을 내린 자들, 그리고 어이없는 법을 만든 자들을 모조리 찾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