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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역대하 17장~22장 : 남유다의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by R.H. 2018. 4. 19.


여호사밧 왕 : 남유다의 제 4대 왕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태평하였다" -역대하 20장 3절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은 개념 왕이다. 우상 숭배 척결하고, 국방을 강화하고, 중앙에서 각 지방에 지도자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교육하고, 민정 시찰을 하고, 각 지방에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신중하게 일 처리 할 것을 명하는 등 아사 왕은 부국강병을 이룩하였다. 



르호보암 이후로 전임 왕인 아사 왕때까지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계속 무력 충돌을 해왔다. 아사 왕 때는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밀고 들어와서 헐레벌떡 시리아에 돈 싸들고 가서 구원해달라고 애걸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여호사밧은 국방을 튼튼히 한다. 각지에 요새를 건설하고, 전투 병력을 베치하고, 양곡 저장 성읍을 건설했다. 기본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침략을 막기 위한 무력 행동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하면서 북이스라엘과 가장 사이좋게 지낸 유다 왕이 된다. 투트랙 전략을 제대로 구사한 왕이었던 것. 



"임금님께서는, 악한 자를 돕고 주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역대하 19장 2절-



하지만 선지자 집단은 아합 가문과의 혼인 정책이 싫었던 듯 하다. 민생과 교육, 법치주의, 부국강병, 민족 대결 중지 등으로 나라를 튼튼히 하고, 안정시킨 업적이 많은 왕인데... 재수없게도(?) 혼인 정책의 상대가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악행으로 유명한 아합, 이세벨 부부인지라.. 카운터 파트너 잘못 만난 거. 뭐 어쨌든 여호사밧의 시대에는 대체로 태평성대 구가.



여호람 왕 : 남유다의 제 5대 왕



문제는 여호람때부터 시작이다. 여호사밧 왕은 평화의 왕답게 장자인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른 왕자들에게는 성읍과 많은 재물을 나누어주었다. 형제들끼기 사이좋게 지내길 바랜 모양. 적국인 북이스라엘하고도 사이좋게 지낸 여호사밧 왕이니까.. 헌데 여호람은 왕위에 올라 세력을 굳히자, 자기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신하들도 죽임. 그리고 여호람의 부인은 바로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다. 



여호람 때에 유다에 조공을 바치던 에돔이 반역하여 지 갈 길 가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침략하여, 재물과 여호람의 자식과 아내들을 싸그리 잡아간다. 국력이 급속히 쪼그라드는 모양새.. 그래서 그런지 왕실 묘지에도 묻히지 못하는 수모를 당함.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의 죽음...



"백성은, 왕들이 죽으면 으레 향을 피웠으나, 여호람에게만은 향을 피우지 않았다.....그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는 않았다." -역대하 21장 19절~20절-



아하시야 : 남유다의 제 6대 왕



아하시야의 엄마는 아달랴, 즉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이다. 여호사밧 왕 이래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의 요람을 문병가는데.. 여기서 예후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족을 끔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이세벨의 딸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