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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사기 6장~8장 : 기드온 (Gideon, 기디언)

by R.H. 2011. 2. 5.

But Lord , Gideon asked, "how can I save Israel? My clan is the weakest in Manasseh, and I am the least in my family."   주여,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내 가문은 므나셋 지파 중에 가장 약한 집안이고, 나는 내 집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사사기 6장 15절>


시간이 흘러흘러 또 다시 유대민족들은 어수선해지고, 미디안을 비롯한 동부 민족들의 노략질에 시도때도 없이 시달린다. 이때 천사가 기드온 앞에 나타나서는 말한다. '니가 좀 나서줘야겠어.' 이 천사라는 게 요즘말로 뒤에서 판세를 살피는 킹메이커 비슷한 거 같은데, 여튼 이에 기드온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내세울 게 없는 집안에 자신 역시도 내세울 게 없다고.. 요즘 말로 하면, 지연 학연이 없다는 말이다. 기드온의 스토리는 뒷배가 없는 자가 꼭대기를 차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그 방법들을 한 번 살펴보자.

기적을 보여줘라 : 대세론 만들기

대세론, 그 말 속에는 그 사람이 이미 선택된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래서 대세론 바람을 일으켜서 널리널리 퍼뜨리면 당선에 유리한 고점을 차지할 수 있다. 머나 먼 과거에도 오늘날의 대세론 일으키기와 유사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기적을 보여주기다. 기적을 통해 그 사람이 신에게서 선택된 사람이라는 선전하고 널리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바위에 고기와 빵을 올려놓고, 고기 끊인 물을 붓는다. 그리고 천사가 지팡이 끝으로 탁 치자 불꽃이 터진다. 굉장한 기적같다. 하지만 이는 딱 보기에도 지팡이 끝에 살짝 불씨를 붙여서 고기 기름물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또 다른 신의 증표를 보여준다.

양털을 마당에 널어두어 밤사이 양털에만 이슬이 먹고, 땅은 건조하면 이것이 신의 증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반대로 양털은 건조하고 땅은 습기가 차게 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데 알다시피, 양털은 주위의 습도가 높아지면 많은 습기를 빨아들이고, 주의의 습도가 낮아지면 습기를 발산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을 이용해서 기적을 행한 것처럼 꾸며낼 수도 있는 것이다. 여튼, 이런 식으로 기드온은 자신이 신에게서 선택받은 자라고 선전하고, 대세론 바람을 일으켰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단호함을 보여줘라

다음으로 기드온은 마을에 있는 바알신 제단을 밤새 때려부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대낮에 하지 않고 밤에 실행한 이유는 그가 아직 실권을 장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낮에 한다면, 대중들이 몰려와 고함지르고 실력을 행사할 때 기드온이 밀리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지난 밤 사이의 일을 알게된 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 들지만, 기드온 아버지의 말빨로 이는 해결된다. 바알신이 그렇게 대단하면 무너졌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바알신을 두둔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내린다. 이때 기드온 세력의 태도가 매우 단호했던 모양이다. 이후 그는 여룹바알 (Jerub-Baal) 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여룹바알은 바알신과 다툰다는 의미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은 권력을 잡는다. 기적(혹은 트릭)으로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선전, 즉 대세론을 일으키고, 바알신상을 파괴하는 대담한 실행력으로 대중들에게 리더로서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십계명의 제 1조항을 상기시켜 기드온 자신이 원리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 이렇게 그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낸다. 

경쟁자들에게 힘을 보여줘라

문제는 그가 주류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사기 7장) 그래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한다. 전쟁의 시대에 능력이란 전과를 올리는 것이다. 기드온은 소수 정예병 300명을 선발하여 미디안을 공격하여 성공한다. 그리고 달아난 미디안인들을 추격하기 위해 에브라임 지파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여기서 잠깐. 기드온은 왜 처음부터 다른 지파들과 연합하여 전투를 벌이지 않았을까.. 다른 지파들이 도와주길 원치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왜냐면 추격전을 도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추격전 이후에 기드온에게 왜 혼자 미디안을 공격했냐고 힐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언 공격은 기드온 혼자 몰래 계획하고 실행한 일이다. 아마도 기드온은 눈에 보이는 성과, 그것도 단독 성과를 올리는 게 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이 눈에 보이는 사업을 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치와 비슷하다. 다음 선거에서 재당선되기 위해서든,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든 자신의 치적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튼,

기드온은 계속해서 미디언 잔여 세력을 추격하다. 도중에 그의 군대는 숙곳 지역에 잠시 들러, 식량지원을 요청하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것은 비웃음과 조롱 뿐이다. 다음으로 브누엘이라는 지역에서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데, 여기서도 비웃음과 조롱만을 받는다. 기드온은 확실히 주변 세력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기드온은 저주를 퍼붓는다. 

Just for that, when the LORD has given Zebah and Zalmunna into my hand, I will tear your flesh with desert thorns and briers.  내가 제바와 즈블론을 잡은 후 돌아와, 너희 살을 가시로 찢어버릴 것이다. <사사기 8장 7절>

추격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드온은 숙곳과 브누엘을 박살내버린다. 특히 숙곳에서는 살생부를 만들어 지도층 77명을 처단한다. 이는 분명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을 것이고,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세력들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기드온을 지원, 혹은 지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았을테니.. 이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몰려와 자신들의 왕이 되 줄것을 요청한다. 분위기가 급반전 되었다. 하지만 기드온은 왕이 되는 것은 거절한다. 그는 사사의 자격으로 40년간 통치한 뒤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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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스토리는 당내 지지 세력이 없는 후보의 경선 승리 스토리를 그린 요즘 드라마 프레지던트와 비슷하다. 하지만 프레지던트라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기적, 전쟁, 살생부, 공포 분위기 조성 등등.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신화(성경도 신화 속에 포함시킨다면) 에서 끝났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그저 배경, 인물만 바꾼 채 신화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