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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그래비티 (Gravity, 2013) : 허무의 심연 속에서

by R.H. 2016. 4. 25.


 




<스포일러 주의>



많은 부분이 생략된 영화다.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우주인이 된 이유와 사명감에 대해 설명이 없다. 그녀가 의사였다는 것, 의료용으로 제작된 스캐닝 시스템을 설치하러 왔다는 것 같은 간단한 사실만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런데 우주 전문 인력이 아닌 그녀가 패널 하나 설치하기 위해, 그 엄청난 우주인 훈련 과정을 굳이 거쳐서 우주까지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가 하는 작업을 보면, 드라이버질만(?)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감상자의 상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하다. 지상에서의 그녀 삶이 그랬을 것이다.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한 삶. 평온해 보이는 일상.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 내부는 슬픔과 고통으로 시끄럽게 아우성쳤을 것이다. 우주에 나와 좋은 점이 뭐냐는 매트(조지 클루니)의 질문에 '고요함' 이라는 그녀의 대답은 그녀가 자신 안의 아우성을 견디지 못해했다는 증거 아닐까. 하여 우주라는 극한 상황 속으로 자신을 집어던지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의 슬픔과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딸아이를 잃은 상실이다. 그녀만이 아니다. 그녀 나이 또래쯤이면 우리 역시 감당못할 상실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가까운 가족과 친척의 죽음, 동시대를 함께한 유명인의 죽음.. 죽음까지는 아니여도 큰 이별을 맞게 되는 나이. 결혼을 하든, 취직을 하든. 삶의 방향이 제각각이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친구 관계도 저절로 멀어지는 나이. 10대, 20대에는 삶이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죽음이란 아주 멀리멀리 있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이제 죽음과 이별이 삶의 영역으로 성큼 상륙하기 시작했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는 나이.



차곡차곡 상실을 경험하면서 슬픔 역시 차곡차곡 쌓여간다. 가랑비에 옷 젖 듯, 서서히 눅눅해지는 감정. 

그리고 어느 순간 축 늘어진 자기 감정에 깜짝 놀라 당황한다. 물먹은 솜같은 축축한 감정을 질질 끌고가다가 순간 발을 헛디뎌 허무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그 어두컴컴한 허무의 심연. 라이언 스톤은 그 심연 속을 부유하고 있다. 미친듯이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그 곳. 기압도, 소리도 없는 그 곳. 삶이 불가능한 그 곳. 우주라는 단어로 치환된 허무의 심연 속에서 끈 하나에 간당간당 생명줄을 연결한 채, 둥등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걸까. 도대체 삶의 목적은 뭘까. 그녀 역시 이런 답없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해왔을 것이다. 그렇다. 답이 없는 질문이다. 계속해서 검은 심연을 둥둥 떠다닐 수 밖에 없다. 혹은 삶의 스위치를 꺼버리던가.. 지금 당장 내 삶의 스위치를 내리고 라이트를 꺼버린다해서 누가 뭐라하겠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지도 설교하지도 않는다. 남아있는 가족의 슬픔, 종교적 이유 등의 구질구질하고도, 납득 안되는 이유 따위를 너절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그렇다. 삶에 이유나 목적은 없다. 단순한 '결정' 만 있을 뿐이다. 자기 등에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계속 갈지 말지의 단순한 선택만 있다. 라이언이 왜 다시 삶이라는 스위치를 켰는가. 계속 가기로 결정한 것 뿐이다. 그리고 지구로의 귀환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기 삶에서 최선의 최선을 해 본 것이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삶을 버티기 위해 미친듯한 최선을 다했기에, 살아도 죽어도 상관없다. 인생이라는 끝내주게 멋진 여행을 하였기에..



그리하여 그녀는 살아남았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일어섰다. 그녀는 더이상 몽유병자처럼 헛헛한 눈동자로 안개 속을 걷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삶에서 부족한 것은 삶이었고,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