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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프리즈너

프리즈너 (The Prisoner) : 정치 우화

by R.H. 2010. 4. 28.
 



<주의! 결말 포함된 강력 스포일러>

 


지구라는 감옥, 혹은 정신병원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디넓은 우주를 생각해 보면, 지구는 너무도 협소한 공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지구라는 이 조그마한 별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지구에 갇혀 있는 셈이다. 중력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전자 발찌일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프리즈너, 즉 죄수다.
 
또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의 마을처럼 지구는 우주에서 고립되어 있는 정신병원이고, 우리는 그 안에 갇혀 사는 정신병자들이라고.. 우리는 과연 우주 저 멀리서 쫓겨난 범죄자들일까. 아니면 정신병자일까.. 

 
빌리지 : 우리 사회의 축소판
 
분명한 것은 드라마 속의 마을이 좀 과장되어서 그렇지,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정치 우화라는 것은 매우 선명하다. 마을에는 권력자 넘버 2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물론 개중에는 그의 포옹에 감격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줌마 팬도 있기는 하다. 그 분이 목도리라도 건네면 폭포수 같은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저항자 6의 눈초리에는 경멸이 하나 가득 담겨있다.
 
마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일명 막장 드라마다. "윙크스" 라는 드라마에는 불륜, 질투, 애인의 형을 사랑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귀싸대기를 날리고, 머리채를 잡아챈다. 넘버 2는 이런 막장 드라마를 틀어주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손뼉 치며 넋을 잃고 시청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 않은가..

넘버 2의 말처럼, 인간은 뉴스라고 불리는 포르노를 만들고, 냉담함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잔인함에서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를 헐떡거리는 비계덩어리 짐승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과연 드라마 속 마을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


권력자 vs 저항자

이 마을의 권력자는 넘버 2다. 그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복종을 요구한다. 반면, 6 는 저항하는 자다. 그는 자유를 외치고, 사람들을 선동질한다. 그는 휴머니티, 양심, 정의 등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이다.

그런데 넘버 2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이유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문제 있는 사람을 자의적으로 추려내서 자신들 맘대로 치료를 해도 되는 걸까? 거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함부로 박탈해도 되는가? 사생활을 마구 들쑤시고 다녀도 되는가?


"난 수많은 결점들이 있어요. 난 좌절하고, 일어서고, 때론 일어서지 못 할 때도 있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하죠.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울 땐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날 치료할 수 없어요. 당신이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 수도 없고요."


6의 말처럼 우리는 불완전하고 문제투성이인 허약한 존재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다루듯이 할 권리는 없다. 이게 이 드라마의 메세지다. 국민을 감시 통제 억압하는 정부의 위험성 대한 경고..

현실에서 6같은 사람은 사회 불순분자로 낙인 찍히고, 밥줄은 끊기며, 매장당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권력자 넘버 2는 종국에 이렇게 말한다. 그야말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고귀한 정신과 비전을 가진 도전자이자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