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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열왕기상 12장~13장 : 사자와 당나귀

by R.H. 2017. 6. 4.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신전, 언약의 궤, 십계명이 새겨진 돌 모두는 예루살렘에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남쪽의 유다 왕국 수도다. 히브리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종교다. 그런데 이처럼 남유다가 유대교 종주국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종교 헤게모니의 주도권을 남유다가 가진 것이다. 

 

남북으로 나뉘었다 해서 철조망 촘촘히 쳐놓고 지뢰 깔아놓고 1년 365일 항시 총구를 노리며 개미 새끼 한 마리 오갈 수 없는 건 아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남쪽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 지내러 간다. 못 갈 이유도 없다. 저 성전을 건축하는데 유다 지파만 참여한 건 아니다. 12 지파가 다같이 돈 내고 노동력 보태서 만들었는데 왜 못 간단 말인가. 북이스라엘 국민이 남유다에 있는 성전을 오가는 것을 막을 권리도 명분도 없으니...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불안하다. 하여 여로보암은 번거롭게 남유다에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둘 테니 여기서 제사지내라고 한다. 

 

금송아지.. 이거 듣보잡 신흥종교 아니다. 애런도 금송아지 숭배 용인했고(그랬다가 된통 당하지만..) 틈만 나면 이스라엘인들은 금송아지 숭배했다. 그들 본래 종교보다 더 인기 있는 종교고, 이집트 같은 강국에서 믿는 메이저 종교다. 여로보암은 이런 민심 선호도를 이용해서 산당도 짓고 제사장도 레위가 아닌 일반 백성가운데서 임명한다. 국민들의 남쪽과 정신적 유대관계를 끊으려는 시도다. 

 

그런데 남쪽에서 '하나님의 사람' 이란 자가 방북했다. 신권을 가진 종교 엘리트 집단에서 파견한 사람이다. 비록 땅은 남북으로 갈라져있어도 민족 정체성을 저해하고 민간교류를 완전히 끊으려는 북쪽의 시도를 그냥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특사를 파견한 느낌이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자는 여로보암이 제사 지낼 때 나타나서는 제단을 격하게 비난한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저놈 잡아라' 하며 손을 뻗으니 여로보암의 손이 마비되고 제단은 갈라지고 재가 쏟아지며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마비된 자기 손 좀 풀어달라고 간청하니 회복된다. 

 

뭔가 그림이 쪼금 이상한데.. 와서 완력 행사하고 깽판 친 거 같다. 근데 깽판만 친 건 아니고, 왜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단 만들면 안 되는지 올곧게 설교했을 것 같다. 이 난리 뒤에 여로보암은 다정하게 집에 같이 가서 피로도 풀고 밥도 먹고 선물도 주고 싶다고 제안하는 걸 보니 말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온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9절)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특사는 정부 공식 채널을 통한 입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왕궁 공식 행사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해야 할 말만 정확히 전달하고 빨리 돌아가려 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로보암은 바로 이 특사를 보내준다. 

 

그런데 벧엘에 사는 늙은 예언자가 남쪽에서 특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뒤쫓아 간다. 같은 종교인끼리 만나 현재 대치 국면도 논의하고 긴장 완화와 민간교류 지속 어쩌고 저쩌고를 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집에 초대하지만, 특사는 같은 이유로 거절한다. 헌데 벧엘의 선지자라는 이 양반은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도 대접하고 마실 물도 대접하라고 하셨소." (18절) 라며 특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자기가 따로 남쪽에서 연락받았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거짓말이다. 이 벧엘의 선지자가 악의가 있어서 이런 거짓말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나중에 특사가 참변을 당했을 때, 슬퍼하며 뒷수습을 했으니 말이다. 그저 선의에서 서로 남북 간에 고위 종교인끼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잘 대접해서 특사를 보낸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났는데, 그 사자가 그를 물어 죽였다. 그리고 그 주검은 길가에 버려 두었으며, 나귀와 사자는 그 주검 옆에 서 있었다"(열왕기상 24절)

 
 
매우 이상한 장면이 전개된다. 특사가 돌아가다가 길에서 사자에 물려 죽는 참변을 당하는데, 그의 시신 옆에는 사자와 나귀가 서 있다. 사자는 나귀를 또 헤치진 않는다. 되게 이상한 장면이다. 사자는 유대 지파의 엠블럼이다.(웅크린 사자 참조) 즉 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입북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유다 지파, 즉 르호보암 왕이 사람들을 보내서 죽인 것이다. 분명 온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했다. 정부로부터 추적당할 것을 염려해서다. 오늘날로 치면 제 3국을 경유해서 먼 길 돌고 돌아 하는 방북과 귀국이다. 
 
 
사자가 유대 지파를 상징한다면, 나귀는 민간인, 혹은 민심이다. 성경에서 나귀는 뜬금없는 장면에 몇 번 등장했다. 발람의 당나귀는 모압의 파병 요청을 받고 떠나는 발람을 지체시켰고, 사울은 당나귀 찾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사무엘은 만났다. 상당히 이상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나귀를 민심으로 치환하면, 다 말이 된다. 모압 왕의 파병 요청을 메소포타미아 왕궁에선 일언지하에 거절할 순 없다. 그런데 민심과 여론은 파병을 반대하니 정부에서는 특사를 보내긴 보내는데 당나귀(민심)가 꾸물거리는 것이다.(참조 포스트) 사울의 당나귀 잡기가 민심 잡기라는 이야기는 여기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남쪽의 특사 역시 민간인 혹은 민심을 등에 업고(당나귀를 타고) 방북한 것이다. 남쪽의 유다왕 르호보암(사자)은 이것이 매우 못마땅하지만, 특사를 수행한 민간인 혹은 민심을 다 때려잡을 수는 없기에 당나귀(민심)는 내버려 두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