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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6-3 LMFAO

by R.H. 2009. 8. 14.

 



제목만큼이나 이번 에피는 재밌다. 보면서 여러 번 모니터 붙잡고 쓰러졌다는. (LMFAO는  Laughing my fucking ass off 의 줄임 말로 인터넷 속어 라네요. 한국말에 배꼽 빠지게 웃기다, 라는 말처럼 직역하면 똥꼬 빠지게 웃기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런데 이번 화가 끝난 뒤 눈 앞에 어른거리는 얼굴은 조디 뿐이다. 그녀의 출연 분량은 얼마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번 에피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는데, 이상한 일이다..



벳은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 빠르게 몰아 부친다. 동시에 관계를 끝내는 것 역시 빠르게 해치운다. 물론 본인은 이별 이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넘치게 망설인다. 문제는 이 고민과 망설임을 "혼자" 한다는 것이다. 관계는 "같이" 하는 것이다. 관계라 함은 행복의 가운데 토막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시작의 두려움도 관계의 일부고, 이별의 괴로움도 관계의 일부다. 



"같이"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작업이다. 상호 조율과 이해는 번거롭기 짝이 없으며, 때론 소모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일단 누군가와 관계 하기로 했다면 그 번거로움과 소모의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관계의 법칙이다. 



제작진은 타샤와 알리스를 통해 이별의 모범 예시를 보여주려는 듯 하다. 타샤는 이별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끄집어 냈다. (대체로 말은 씨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타샤와 알리스는 이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벳에게는 바로 이것이 없다. 벳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론 내고는 관계를 싹둑 잘라버린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조디에게 사퇴를 강요한다. 자 이제 조디를 이야기해 보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때 보여주는 조디의 표정은 압권이다. 그런데 그녀가 빠르게 움직이는 관계로 캡쳐가 이상하게 되서 차선으로 올린 사진. 벳에게 그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서 빠르게 돌아섰는지도 모른다. 


   

"Go ahead!" 라고 쏘아 붙이고 자리를 박차며 나가는 조디. 벳을 무시하고 경멸하고자 했으나 그녀의 마지막 표정에는 슬픔이 스며 나와 버리고 말았다. 경멸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뒤엉켜서 일그러져버린 그녀의 표정.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이 웃음을 참을 수는 있어도 울음을 참을 수 없고, 기쁨을 감출 수는 있어도 슬픔을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니까. 



조디는 사회에서 자신의 권익을 제대로 지키는 다부진 사람이다. 그녀가 벳의 사무실에 고의적으로 수화 통역사를 대동하는 모습은 그녀의 권익 활용의 다부진 예이다. 



조디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아티스트다. 그 학교가 아니더라도 그녀를 모셔갈 곳은 널려 있으며, 어디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작품 활동만으로도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녀는 단호히 사퇴를 거부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관둔다.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는 줄 아냐?",라고 침 한번 내뱉고 돌아서지 않는다. 



그녀에게 그 학교 교수직이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녀가 그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는 벳의 요구가 불합리한 권력 남용이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자 조디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조디의 적극적인 자기 권익 지키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상의 불합리와 편견, 그리고 횡포에 맞서 싸웠기에 지금의 조디가 존재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권익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그 권익을 챙겨주지 않는다. 자신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은 거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도전하는 자에게 보상은 당연하다. 지금 조디의 사회적 지위는 바로 도전하는 자가 힘겹게 싸워 쟁취한 트로피다. 그런데 이걸 내놓으라고??? 



이러한 도전형 인간 조디라면 벳의 불합리한 강요와 횡포를 그 자리에서 논리적으로 맞받아치고, 벳에게 모욕을 주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살아온 조디다. 그런데 "해볼 테면 해봐" 라는 감정 섞인 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뜬다. 조디답지 않다. 아마도 조디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정을 어쩌지 못했던 것 아닐까? 그래서 난 벳의 사무실을 나온 뒤 조디가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조디가 어떤 사람인가. 불의와 횡포에 물러난다는 것은 조디가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포기한다는 말이다. 삶에서 사랑이 떠나가기도 하고, 상처로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는 학장 필리스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 벳이 해고 당한다. 그리고 조디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다. 멋있다. 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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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정의가 권력 남용의 횡포를 통쾌하게 박살 내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나면 권력 남용자는 상대를 자리에 연연하는 구차하고 구질스런 사람으로 몰아세우죠.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교묘하게 위협하고, 모욕을 주어서 결국에는 지쳐서 나가 떨어지게 만듭니다. 현실은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