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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막심 고리키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1905>

by R.H. 2017. 2. 3.

 

 

 

 

"그들은 삶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술과 심술에 절어 있는 사람들, 더럽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은퇴한 대위 쿠발다가 운영하는 여인숙의 장기 투숙객들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이다. 생존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고리키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거짓 묘사를 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 이런 거 없다. 고리키는 "삶에서 추방당한" 지친 사람들의 추하고 악랄한 모습, 거칠고 폭력적이며 저열한 모습을 숨김없이, 그리고 가감없이 묘사한다. 

 

 

쿠발다가 여인숙을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그 건물은 자본가이자 공장주인 페투니코프 소유다. 쿠발다는 그저 건물을 빌려 운영하는 전형적인 영세자영업자다. 그나마도 딱히 돈을 벌겠다, 모으겠다는 목적은 조금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살아가는 불한당들의 두목노릇을 하는 게 주업이다.

 

 

이 여인숙의 건너편에는 바빌로치가 운영하는 술집 건물이 있다. 그 역시 쿠발다처럼 전직 군인이다. 그러나 쿠발다와 달리 바빌로치는 차근차근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사는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쿠발다가 페투니코프로부터 임대받은 허물어져 가는 건물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바빌로치는 자기 건물에서 술집을 운영한다. 그는 중산층 자영업자, 적어도 중산층 편입을 눈앞에 둔 사람이다. 

 

 

그래서 삶의 방향이 다르다. 바빌로치는 옆 공장의 페투니코프 부자로부터 부당하게 땅을 갈취당하면서도 묘하게 그들을 부러워한다. 대학교육까지 받고, 반짝이는 구두에 반질반질한 피부를 가진 그들. 무엇보다 상대를 압도하는 능수능란함과 타협의 능력. 바빌로치는 페투니코프라는 자본가가 내미는 어이없는 합의 문서에 사인할 것을 강요받아 괴로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들을 선망한다. 중산층인 바빌로치는 브루주아인 그들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쿠발다는 자본가 페투니코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페투니코프는 그간 방치해놓은 이 허름한 여인숙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고 싶다. 요즘말로 재개발이다. 근데 이놈이 순순히 물러나겠는가. 여인숙에 투숙하는 패거리들을 데리고 몰려다니며 활보하고 큰소리치고 설교하고 떵떵거리는 이놈을 좀 어떻게 손보고 싶은데.. 여인숙의 장기투숙객 중에 하나인 필립이 갑작스레 죽는 일이 벌어진다. 페투니코푸는 이를 꼬투리 잡아 상황을 이용하여 쿠발디가 경찰에 연행되게 한다. 교묘한 승리다. 

 

 

그런데 이때 페투니코프 앞을 거칠게 밀치고 지나가는 더럽고 냄새나는 넝마를 짊어진 노인. 페트니코프는 "당신 누구야!" 라며 이 더러운 노인을 노려보는데.. 이 허리굽고 비참한 노인은 낮은 인간이 응당 취해야 할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비굴함 말이다. 지은 죄도 없이 조마조마해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은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는 변명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여기에 투숙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무해함을 호들갑스럽게 널어놓는 짓 같은 것 말이다. 대신 그 더러운 노인은 분노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한다. 

 

 

"인간이야!

 

 

타인의 존재를 우습게 알고, 하찮게 여기며 너 뭔데? 라며 존재의 존엄을 짓밟으려는 질문에 이 존재는 "인간이야!" 라고 응수한 것이다. 

 

 

 

 

고리키가 바라보는 인간 본성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체험에서 비롯된 민중에 대한 한숨.. 나약하기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간의 천한 본성을 막심 고리키는 언제나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그/럼/에/도 막심 고리키는 등 돌리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있지도 않은 허상으로 인간애를 갖는 것은 인간애가 아니다. 눈속임다. 거짓이고 사기고 기만이다. 이 허상이 들춰지면, 되려 지독한 인간혐오만이 생길 뿐이다. 막심 고리키는 이런 허상을 그리지도, 보여주지도, 선전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추하고 더럽다고.. 가난한 자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더욱 잔인하다고.. 그래서 나는 슬프다고, 나는 괴롭다고, 하지만 포기하진 않을 거라고.. 당신들은 어떠하냐고, 동의하냐고, 함께하겠느냐고.. 막심 고리키는 그의 소설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