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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시즌 마지막회 (3) :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

by R.H. 2010. 1. 24.
<스포일러 주의>
 
믿지 못하는 자들

섬 밖에서 아버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로크에게 헬렌은 과거(아버지) 를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음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
로스트 2-3 A leap of faith)
로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헬렌이다. 그런데 그는 어리석게도 끝까지 아버지를 믿는다. 그가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면,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헬렌과 오손도손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가 믿어야 하는 한 사람(One) 은 헬렌이었건만..

잭이 믿어야 하는 것 역시 핵폭탄으로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현재의 케이트다. 케이트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 구하고, 바라고, 믿는다는 말처럼 잭은 케이트를 구하고 바라지만, 믿지는 못 한다. 그녀에게 이 섬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꺼내지조차 못한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상대가 그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상대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줄리엣 역시 소이어를 믿지 못한다. 케이트가 잠수함에 들어왔을 때, 소이어가 잠시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줄리엣은 흔들린다. 이런 그녀는 섬으로 돌아와 잭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불안해하느니 다 없애는 게 낫다는 심보다. 돌멩이로 내리친다고 핵폭탄이 터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수와 선화 역시 서로를 믿지 못했다. 진수는 자신의 가난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여,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 했다. 선화는 호텔 벨보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재벌집 딸이다. 진수 집안의 가난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진수는 선화를 속였다. 선화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화는 바람을 피우면서 진수를 속였다. 이런 그들이 섬에 와서 신뢰를 배우고, 회복했다. 이 부부는 이제 다시 만나기면 하면, 미션 완수다.


로크, 잭, 줄리엣, 선화와 진수 모두는 상대를 사랑했다. 하지만, 상대를 믿지는 못했다. 관계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믿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 그리고 믿어야 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사실 쉽다. 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망신 당할 염려 없다. 배신 당할 염려도 없다. 물질적으로 크게 손해 날 일도 없다.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거다.

그런데 사람을 믿는 건 진짜 어렵다. 사람에게 마음 고백 잘못했다가 퇴짜라도 맞으면 어쩌나... 망신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이거 무서워서 끙끙대는 게 우리다.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걱정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 찾아서 떠나면 어쩌나... 옆에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거다. 게다가 사람 잘못 믿었다가는 사기 당하기 십상이다. 

섬에서 그들 역시 서로를 믿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을 믿지 못한다. 의심 가는 사람을 고문하고, 구덩이 파서 가둬놓고, 믿지 못해 서로 편가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 질리게 봤다. 당연히 옆 마을에 사는 다른 공동체(디아더스, 달마..) 사람들은 더더욱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숲 속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칼부터 꺼내 들고, 총부리부터 겨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것은 모래 위의 성이다. 선화와 진수처럼 같이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니다. 소이어를 사랑하면서도 믿지 못한 줄리엣은 갑자기 섬으로 돌아와 핵폭탄을 돌멩이로 내리치는 짓을 한다. 고학력 엘리트인 그녀가 핵폭탄 터트려서 시간을 되돌린다는 검증 안 된 가설을 믿는다. 소이어라는 한 사람은 못 믿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환장하겠는 거는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신을 믿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진짜 어렵고 힘든 것은 사람을 믿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믿기 힘들어하는 게 바로 우리니까..
 
그리고 서로를 믿는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총을 꺼내 들어야 한다.
로즈의 말처럼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는 방법을 궁리해내야 한다.
서로를 완전히 믿는 법을 보여주는 로즈와 버나드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