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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도스또예프스끼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1849>

by R.H. 2017. 2. 17.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면 네또츠까라는 소녀의 성장이다. 이야기는 삼부로 전개된다.



첫 번째 부분은 한때 천재성을 가졌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만 뒷걸음쳐서, 결국 그 천재성을 상실해버린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광기와 절망, 그리고 파멸을 네또츠까라는 8세 소녀의 눈으로 묘사한다.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다운그레이드 버젼같다. 스트릭랜드는 몸과 마음을 불사르며 경계의 끝까지 자신을 몰아가는데,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중요한 고비마다 주저주저함) 두 번째 부분은 고아가 된 네또츠까가 공작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지내는 이야기다. 그 집 딸인, 철부지 동갑내기 소녀와 소소하게 갈등하고 아기자기하게 질투하다 절친되는 내용. 세 번째 부분은 공작과 그의 어린 딸이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면서, 네또츠까가 공작의 첫째 딸 집에 수양딸로 들어가 사는 이야기로, 이 집 부부 사이에 있는 알쏭달쏭한 감정의 미스테리가 주 내용이다. 



그런데 결말이 읭스럽게 끝난다. 이야기를 하다말고 갑자기 땡 하고 끝냄. 도스또예프스키가 사회주의 운동에 연류, 체포되어서 소설을 쓰다 마셨다고.. 원래 구상은 대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 이야기가 내용상 아무 상관 없는 듯이 느껴진다. 근데 읽다보면, 엄청나게 빨려 들어간다. 여튼, 미완성인 걸 감안하고, 작가의 본래 구상 의도를 상상해보기로 한다



예술을 사랑한 네또츠까



첫 번째 이야기에서, 소녀(네또츠카)는 계부에게 묘한 사랑을 느끼고, 엄마를 버리고 계부와 도망가길 은밀히 소망한다. 이것은 계부의 천재성을 사랑한 것이다. 엄마로 대변되는 가난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욕망이다. 네또츠까는 바이올리니스트인 계부를 비정상적으로 사랑한다. 어머니가 생계를 모두 짊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 걸 알면서도 엄마를 미워한다. 엄마가 죽기를 바라는 계부의 미친 생각까지도 동조한다. 이게 잘못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계부는 예술이다. 엄마는 생활이다. 소녀는 예술을 찬양한다. 생활을 증오한다. 먹고만 사는 일상, 평범한 일상, 가난한 일상이 있는 다락방이 싫다. 저 건너편에 어렴풋이 보이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집을 소망한다. 음악이 흐르는 저 집을 상상한다. 다락방이라는 현실과 일상이 아닌,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상상의 공간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래서 소녀는 비정상적인 계부(예술)에 동조한다.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달아나고 싶다. 엄마라는 진부한 일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사랑한 네또츠까



"미의 감정, 우안한 것에 대한 감정이 충격을 받고, 미에 의해 촉발된 어떤 것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나의 사랑이 싹트게 된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소녀가 공작의 딸 까짜를 열렬히 사랑한다. 네또츠까는 허약하고 예민하고 소심하며 우울한 소녀다. 병약하여 놀 줄 모르고, 생각만 하는 네또츠까는 까쨔의 건강함, 쾌활함, 활기참을 사랑한다. 무엇보다 까쨔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까쨔는 미의 원형이 현실로 드러난 존재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다. 네또츠까는 첫눈에 반한다. 까쨔와 네또츠까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로 그 사랑이다. 에로스적 사랑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걸 우정이니 뭐니 하는 걸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건 분명 사랑이라고 말한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하루종일 생각나고, 꿈에서도 나타나는 존재. 너무나 노골적으로, 투명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두 소녀의 열렬한 사랑을 펼쳐놓았다. 그것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두 소녀는 사랑한다. 이런 사랑을 방해하는 건 태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그래서 순간 착각했다. 내가 이 책을 설렁설렁 읽었나?? 네또츠까가 소녀가 아닌 소년이었나, 하고.. 중간에 갸우뚱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니다. 



소녀는 소녀를 사랑한다. 정신 나간 듯이, 미친 듯이, 넋을 잃고 서로에게 열중한다. 도스또예프스끼가 그린 <추억의 마니>다. 추억의 마니는 마지막에 덕지덕지 변명을 좀 붙였다. 여러분이 생각한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요, 이 두 소녀는요.. 뭐 그런..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는 일필휘지로 두 소녀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놓으심. 까쨔 엄마는 이 둘을 좀 떼어놓으려고 하는데, 아빠는 심지어 축복도 해준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러블리하게 글 쓰시는 분이 아닌데, 결이 너무 달라서 좀 의아했음)



슬픔을 사랑한 네또츠까



"마치 어떤 감추어 둔 슬픔이, 어떤 은폐된 마음의 병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혹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소녀는 알렉산드라를 동정한다. 연민의 감정이다. 이것은 소녀의 비극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까쨔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면, 알렉산드라를 처음 본 순간에는 가슴이 아파왔다. 알렉산드라와 남편의 관계는 어딘가 모르게 비정상적이다. 겉보기에 문제 있는 부부는 아니다. 병약하고 소심한 아내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비정상적이다. 분명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지 않는데도, 학대하는 듯이 느껴진다. 이들 사이에 물리적 학대는 없어도, 감정적 학대가 있는 것이다. 



남편의 관용에는 고압이 들어있고, 남편의 미소에는 억압이 들어있다. 남편의 다정함에는 우월감이 들어있고, 남편의 동정심에는 학대가 들어있다. 그렇다. 동정심에도 학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소녀는 이 미묘하게 불평등한 관계가 불쾌하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을 증오한다. 은밀한 우월감으로 타인을 동정하는 자. 교묘한 눈빛을 가린 채, 가증스런 미소를 짓는 그 남자를..



또한 알렉산드라는 네또츠까의 엄마이자 언니이고, 친구이자 선생이 된다. 알렉산드라는 네또츠까의 새로운 세계가 된다. 알렉산드라로부터 소녀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받는다. 요즘말로 전인교육이다. 책을 함께 읽고 해석하고 분석하고, 공감하고 기뻐하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라가 선별한 책을 통해서다. 그러다 어느날 소녀는 서고 열쇠를 몰래 줍는다. 이 많은 책을 손에 잡히는대로 닥치는 대로 읽어나간다. 책에 매료된 소녀.. 이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머릿속에 건설한다. 게다가 네또츠까는 이 집에서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다. 소녀는 이제 뛰어오를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확 끝난다. 사전 정보 없이 읽었기에 깜짝 놀랐다는. 이게 뭐야, 끝난거야, 뒤에 뭐 더 없어? 책이 인쇄가 덜 된건가.. 네 이렇게 끝났습니다. 여튼 이게 완작이 되었다면, 소녀의 성장, 정확히는 예술가로 성장하는 소녀의 모습이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슬픔과 지식을 사랑한 예술가로의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