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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39

에밀 졸라 <나나, 1880> 사랑의 여신 비너스, 태어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기가 막히게 매혹적인 신인 여배우가 나타났단다. 나나는 과연 누구일까. 얼마나 대단한 여자일까. 이 여자가 비너스 역할을 맡아 파리 무대에 데뷔한다는 소식에 극장은 관객들로 가득 메워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녀는 노래도, 연기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요즘 말로 발연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전시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자기 육체가 지닌 절대적인 힘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나는 자신의 육체로 극장을 압도하고, 관객을 사로잡고, 파리를 휘어잡는다. 그리하여 극장 안을 욕망과 관능으로 잔뜩 부풀어 오르게 만든 나나의 데뷔 무대는 대성공이다. 자고 나니 그녀는 벼락 스타가 되었고, 나나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2018. 3. 4.
에밀 졸라 <목로주점, 1877>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피해, 랑티에라는 남자와 파리로 도망친 젤베즈. 그런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고, 랑티에 이 놈은 여자 등골 파먹고 사는 놈팽인데, 어느 날 젤베즈의 속옷까지 전당포에 맡겨 마련한 돈으로 옆집 여자랑 바람나서 떠나버리는 상쓰레기다. 차라리 잘 됐다. 랑티에가 사라져서 돈은 이제 안 뜯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튼 젤베즈는 날품팔이하며 두 아이를 성실하게 키우는데, 이런 그녀를 눈여겨보던 이웃집 총각 쿠포가 젤베즈에게 청혼한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젤베즈에게 드디어 해 뜰 날이 온 듯하다. 쿠포는 지붕일을 하는 성실하고 순박한 남자다. 이제 남자라면 학을 떼는 젤베즈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쿠포의 매너에 감동한다. 구질구질한 삶을 사는 그녀를 구원해줄 남.. 2018. 2. 20.
기 드 모파상 <벨 아미,1885> "그곳에 계속 남아 있을 걸! 어쩌겠는가. 파리로 오면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그랬다. 아주 꼴좋게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2년을 복무한 뒤 제대한 뒤르아는 지금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 몇 개로 점심을 굶을까, 저녁을 굶을까.. 고민하는 지경이다. 식민지에선 맘대로 약탈하고, 그걸 자랑하기도 했는데.. 식민지에선 제1 세계 백인 남성의 우월감을 맘껏 느낄 수 있었는데.. 파리로 오니 이게 뭔 꼴인가.. 그렇다면 뒤르아는 왜 그 편한 자리를 그만두고 파리로 왔을까. 이 소설은 1885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이미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즉, 정치군인이 눈부시게 성공하던 시대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 2018. 1. 13.
막심 고리키 단편 <첼카시> "항구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노련한 늑대이자 지독한 술주정뱅이에다 솜씨가 훌륭한 대담한 도둑"인 첼카시는 부스스한 머리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더러운 부랑자 꼴로 되는 대로 살아가는 놈이다. 오늘도 그는 한탕 하려고 항구 주위를 어슬렁거려 본다. 종종 그의 일을 보조해 주던 놈을 찾아보는데, 보이질 않네.. 넉살 좋게 세관 병사에게 접근하여 그놈 근황을 알아보니, 쇳덩이에 다리에 짓이겨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단다. 젠장. 주위를 다시 둘러본다. 같이 한 탕 뛸 놈을 찾아야겠는데.. 옳커니. 저기 멍 때리며 부둣가에 앉아있는 "어린애 같은 맑은 눈빛을 한 건강하고 순진한 젊은이" 즉, 꼬붕삼기 딱 좋은 촌뜨기 한 놈이 보이는구나. 은근슬쩍 접근해서 말 붙여보니, 역시나 신.. 2018. 1. 7.
막심 고리키 단편 <이제르길 노파> "그때까지 나는 힘들게 노예처럼, 더럽고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아니면 반은 죽은 듯이 그저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만 보아왔다...나는 이제르길 노파의 인생 역정이 분명 여자들 마음에 들 것이고 그들에게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장 가까운 여자가 전혀 감동받지 못하고 그냥 잠들어 버린 것이다!" -막심 고리키, 는 개인적으로 읽은 막심 고리키 소설 중에 젤 별로였는데, 정작 고리키는 작정하고 야심 차게 썼나 보다. 고리키가 자전적 소설인 에서 를 언급한 걸 보니 말이다. 현실에서든 다른 소설에서든 고리키가 보아온 여성 캐릭터는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즉 창녀거나,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 즉, 중산층 이상의 속물 여성이었.. 2018. 1. 6.
막심 고리키 단편 <첫사랑> "그녀는 있는 것만으로 살아갈 줄 아는 여자였다....생활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모기라도 쫓듯이 손을 내저으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가난한 생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화려한 여자.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화려함을 충족시켜줄 부유한 남자를 찾는 일 따윈 관심도 없는 여자. 귀족학교 출신의 배운 여자. 파리를 경험한 여자. 그러나 '그'와 함께 욕실에서 썩은내가 나는 싸구려 월세방에 사는 걸 신경도 쓰지 않는 여자. 궁핍을 고통스럽게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이 여인은 아예 신경조차도 쓰지 않는다. 가난을 가볍게 웃어넘기는 여자.. 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인인가. 누군들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녀에게 삶은 거대한 축제다. 매일매일 새로운 마술이 펼쳐지는 삶이다. 그녀는 삶을 즐겁고.. 2018. 1. 4.
막심 고리키 단편 <스물여섯 명의 사내와 한 처녀, 1899> "우리는 스물여섯 사람이었다. 아니, 축축한 지하실에 갇혀 있는 스물여섯 개의 살아 있는 기계였다"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빵을 굽는 노동자들. 이들은 유난히 힘든 일을 하고, 유난히 꾀죄죄하며, 유난히 헐벗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같은 건물의 노동자들에게도 무시당한다. 그런데 이 침울한 공간을 잠시 잠깐 밝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같은 건물의 자수점에 일하는 여공, 요컨대 미싱 공장 여공이 아침에 방문 할 때다. 같은 건물의 노동자들도 무시하는 지하실의 구질구질한 남자들에게 아침마다 밝은 웃음을 건네는 타냐는 26명의 살아있는 기계들에게 여신 같은 존재다. 아침마다 '빵 하나만요^^' 하며 상큼한 미소를 보내는 이 아가씨에게 따끈한 빵 하나 건네는 것은 26명의 사내.. 2018. 1. 3.
막심 고리키 단편 <거짓말 하는 검은 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 "어느 작은 숲에서 생긴 일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던 새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희망과 확신에 찬 노래를 불러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숲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는 절망과 우울, 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구원은 없다'는 패배주의에 물든 노래는 까마귀가 주도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나름 아름다운 구석도 있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노래 특유의 센치한 아름다움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희망의 노래, 승리의 노래, 일어섬과 전진의 노래가 숲에 울려퍼진다. 이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자 누구인가. 이 용감한 노래를 하는 새는 분명 아름다우리라, 위풍당당하리라.. 그 새를 찾아가자, 그에게 환호와 감사를 바치자. 그런데 이게 웬일. 새떼들이 몰려가서 보니, 그것은 숲.. 2018. 1. 2.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59> 로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중반 남자다. 물질적으로 여유롭고,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에든 능수능란한 그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라는 걸 고함지르고 꽥꽥대고 폭력적이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다.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챙기고, 자기 여자의 행복을 원하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많다. 정해진 위계질서가 주는 편안함도 있는 거고.. 여튼 로제가 바로 이런 긍정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다. 그런데 이게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악랄한 모습만 있다면, '이건 아니다,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좋은 모습이 꽤 있으면, '세상에 좋기만 한 게 .. 2017. 12. 31.
카프카 <변신,1915>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침에 눈 뜨니 벌레로 변해버렸단다. 밑도 끝도 없는 시작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단서도 주지 않고 바로 소설이 진행된다.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났는데, 그레고르는 출근 기차 놓치는 걱정부터 한다. 지금 그런 걱정 할 때입니까.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튼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들이 방에서 나오질 않으니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 지배인까지 가정 방문하여 꿍시렁거린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열쇠공을 부를까 어쩔까 하는 와중에 그레고르는 가누기 힘든 몸을 꿈틀거려 문을 여는데.. 충격과 공포!! 가족들과 지배인은 놀라자빠지고.. 아버지는 서둘.. 2017.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