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여호수아 8장 : 관용 없이는 클 수 없다
R.H.
2010. 2. 24. 04:54
그 날에 아이 사람 모두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여호수아 8장 25 ~ 26절>
아이(Ai) 는 조그만 성이다. 말이 성이지, 오늘날로 치면 군(郡) 정도나 될까.. 그런데 남녀 만 이천 명을 죽였다. 민간인 학살 수준이다. 게다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죽였다. 무차별 살육이다. 그리고 아이의 왕은 죽여서 나무에 목 매달아 둔다. 해가 진 뒤에는 그 시체를 성 문 앞에 던졌다. 나중에 나오지만, 다른 지역을 정벌한 뒤에도 여호수아는 이와 같이 한다. 손가락 발가락도 절단내기도 한다. 잔인 무도하다.
보통 전쟁을 하기 전에 적에게 항복을 권유하거나 상황에 따라 조약을 맺곤 한다. 그런데 여호수아군은 그런 거 전혀 없다. 협상, 타협, 공존.. 아니 적어도 정복 후 관용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손바닥만한 땅만 가진 소국밖에 될 수 없는 이유다. 폐쇄적인 민족주의, 상대에 대한 불관용, 무자비한 살육이 기본정책인 이스라엘은 빠른 속도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만, 그 이상 크지는 못한다. 불관용과 폐쇄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대국이 될 수 없다. 마음이 좁으니 좁은 나라를 가질 수 밖에.. 설령 잠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하더라도 반짝했다가 사라질 뿐이다. 거대 제국을 가지기 위한 조건은 힘을 겸비한 관용이다. 힘과 관용,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 지속 가능한 제국이 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만 잘났다고 으스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대 참지 못하는 인간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겠는가... 이런 사람이 세력을 형성해봤자 기껏해야 양아치 패거리 정도다. 여튼,
그런데 어째서 이런 불관용과 폐쇄적 민족주의를 뻔뻔스레 기록한 성경이 전세계 최장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예수 덕분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관용 정신 덕분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단순히 옆집 철수네, 영희네하고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우리와 정책을 다르게 하는 집단, 우리와 다른 종교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긴 한데, 실현하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실천하려 노력은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난리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죽인 예수 덕에 유대인의 이야기가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니.. 성경이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예수가 말한 관용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남의 장점을 보고 배우기도 하지만, 남의 단점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보다 크고 잘 사는(혹은 살던) 나라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듯이, 손바닥만한 땅밖에 가지지 못하는 나라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배운다. 사실 우리의 모습은 후자와 비슷하다. 휴전선을 그어놓고 살고 있으며, 그 아래 조그마한 땅 속에서도 지역을 가르고 이념을 가른다. 요즘은 종교까지 세력 가르기에 뛰어들었다.
이스라엘은 옆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는다. 공존은 없다는 방식이다. 불관용, 무자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몰살시키려는 마음.. 세상에 나와 생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하여 다 죽이려 든다면, 이 세상에 살아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왜 "다른" 생각과 "틀린"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유일하게 여호수아가 이웃과 협정을 맺은 사건이 여호수아 9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협정은 사기성이 짙다. 즉, 이스라엘은 남과 절대로 협상 따위는 안 하는데, 사기 당해서 협정을 맺어서 어쩔 수 없이 이를 지켰다는 거다. 9장의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