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2001) : 20대, 그 서툰 시작
소외된 도시와 그녀들
상업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막 나선 다섯 친구들의 비루한 모습과 어긋나는 우정, 그리고 그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참기 힘든, 그러나 어쩔 수없이 참아야 하는 현실을 세밀하게, 그리고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하고 있다.
배경 도시는 인천이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대도시, 그러나 서울과는 전혀 다른 느낌. 칙칙하고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소외감이 드는 이 도시.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 공장들, 일제 시대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버려진 철길들, 지저분한 고가 도로. 이러한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현재 모습인 걸까?
지영 :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가족에 대한 짜증
지영이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실업자다. 파출부 일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허름한 공장에서의 면접, 면접관들의 무성의하고도 사람 놀려먹는 듯한 썩은 질문들. 경리 일을 하려면 신원 보증해줄 직계 가족이 필요하다는 비수 같은 말에 그녀는 절망한다.
지영이가 그 우스꽝스러운 면접에서 퇴짜맞고 걸어오는 어두침침한 터널에서는 손톱으로 쇠를 긁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울리고 있다. 그녀는 지금 고통의 터널 속을 걷고 있다. 터널 속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음은 지영이의 마음이 울부짖는 소리다.
그녀에게 가족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냥 짐덩이고, 구질스러움일 뿐이다. 지영은 이제 상고 졸업한지 1년.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이제는 직업도 없다. 지붕이 내려앉는 게 뻔히 보이는 굴 속 같은 지긋지긋한 집.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굴 도울 처지가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이 연약하고 가녀린 소녀에게 기대는 가족.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이 아가씨에게 짐덩이 가족이 있다. 차라리 고아이기를 바라는 코너에 몰린 심정이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붕이 결국 내려앉아 조부모가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형사들도 상황을 뻔히 알기에 형식적으로 조서를 쓰려고 취조하는데, 지영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지영이는 사고 당일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알리바이는 명백하고, 집주인도 주저앉은 지붕에 대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안다. 사고였다는 걸. 그런데 지영이는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소년 보호원에 수감된다. 왜 지영이는 말을 하지 않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이사도 못 가고...근데 나 하나만 바라봤어요. 매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화내고 짜증냈어요. 다 죽고 차라리 나 혼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고아가 되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아요. 정말 나 혼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죽인 거에요." (영화 본편에는 나오지 않는 대사임. DVD 삭제 씬에서 나옴)
그녀는 지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해버렸기에 스스로를 벌하고 싶은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극단에 몰렸더라고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생각. 생각하려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진정으로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떠오른 생각.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지영의 심리는 단순한 짜증을 넘어선 고통과 분노, 적개심과 절망이다. 자신의 유일한 가족마저 죽길 바랄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린 심리. 얼마 경험하지도 않은 세상사에 질린 지영은 무인도에서 삽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단다.
혜주 : 내면의 나약함과 상처 싸가지로 감추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무시하려 든다고."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새벽녘에 울리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 허름한 아파트에서 걸어 나오는 혜주는 박살이 난 차를 본다. 무뚝뚝하고 어두운 표정의 얼굴. 분노를 억눌렀지만 그녀의 발걸음에서는 분노가 스며 나오고 있다.
혜주는 졸업 이후 다른 친구들과 달리 유일하게 제대로 된 회사(서울에 있는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냥, 사회 생활 경험이 풍부한 냥 행동한다. 한 마디로 참 재수없는 캐릭터. 그러나 그녀는 회사에서 저부가가치라는 세련된 욕지거리를 듣고 잔심부름이나 할 뿐이다.
그녀는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 하지만 혼자서는 눈물 짓는다. 실제로는 마음이 여리고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나약함을 표현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다.
결국 혜주의 부모는 이혼하고, 친언니마저 지방으로 떠나버리고,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이제 서먹해져 버렸으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지영과는 만날 때마다 싸움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혼자 남은 혜주 곁에는 그녀를 이해하는 찬용이가 있다. 혜주가 찬용에게는 억지스런 가짜 싸가지를 거두기를..
태희 : 세상 물정 모르는 공상가
태희는 5명의 친구들 중 가장 정상적인 가정에 속에 있다. 맥반석 체험실을 운영하는 도시 중산층 가정. '행복해저 좋아 죽겠어요' 하는 식의 가정은 아니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무엇보다도 큰 문제 없는 가정이다.
그녀는 지영이처럼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지도 않고, 혜주처럼 상고 출신이라고 잡일이나 시키면서 고급 언어로 사람 바보 만드는 짝퉁 인텔리들도 상대하지 않고 산다. 그녀는 학교 졸업 후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맥반석 체험실에서 식혜나 배달하며 살지만, 생존상으로는 편하다. 사회 생활의 더러운 꼴을 억지 웃음으로 참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무료한 일상이 답답하다.
태희는 가장 철없는 캐릭터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가 먹여 살려야 할 입도 없다. 그래서 가장 순수하기도 하다. 돈 빌려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않고, 장애인 타자치는 봉사도 나간다. 월미도에서 동남아 노동자들에게도 편견 없이 대한다. 정치인이 돼서 많을 사람을 돕고 살고 싶다는 뜬구름 잡는 말을 할 수 있는 철부지의 순수함이다. 이런 그녀는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는 약간의 두려움이란 삶이 반복과 지루함으로 끝날 거라는 정도다. 무표정하게 한약을 달이는 엄마의 삶처럼...
태희와 지영이 함께 걷는 장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이 거지에 대한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태희는 궁금하단다. 어디에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거지를. 그래서 저런 사람들을 한 번 뒤쫓아 가보고 싶다고 한다. 헌데, 지영은 말한다. 나도 저렇게 될까 두렵다고... 저렇게 다니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냐고.. 지영의 삶, 굴속 같은 집은 바로 저 거지의 삶에 다가가기 일보직전이다. 삶의 완전 밑바닥은 아니지만 지영의 삶은 그 밑바닥에 너무 가깝다. 그래서 두려워한다.
태희는 공상가다. 지영이와 달리 치열한 생존 문제에 부딪혀 보지도 않았고, 혜주처럼 세상의 멸시와 비웃음을 직접 대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똑같은 거지를 보는 두 사람의 관점은 이렇게 다르다.
결국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소년 보호원에 수감된 지영이 나오는 전날 밤. 태희는 식구들 몰래 짐을 꾸려 집을 나선다. 태희와 지영은 함께 떠나기로 한 모양이다. 태희는 지영에게 말한다.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더라도 그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야." 이 둘 사이에는 새로운 신뢰와 우정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태희와 지영은 지금 함께 떠나지만, 이 둘이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한 명은 앞을 보고, 한 명을 옆을 본다. 시간이 지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이 둘 역시도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암시다. 우리 모두 그러하듯이...
그 밖의 장면들
지영이가 혜주에게 생일 선물로 준 고양이를 담아 간 상자. 지영이는 지난 밤 포장지를 손수 그렸다. 그런데 혜주는 포장지를 확 뜯어낸다. 지영이가 그렸는지 알아채지도 못한다. 이것은 복선이다. 혜주와 지영의 사이가 포장지처럼 확 찢어질 것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태희는 지영이가 그렸다는 것을 알아본다. "이거 네가 그린 거야, 그런데 좀 지루하겠다." 영화 엔딩에 태희와 지영은 함께 떠난다. 하지만, 계속 함께 할거 같지는 않다. 태희와 지영은 일부는 공감대가 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위에서 말한 태희의 문장에서 보여준다.
저녁 밥을 먹던 지영이와 조부모. 할머니는 총각 김치를 구차스럽게 드시고 계신다. 짜증이 난 지영은 총각 김치를 자를 칼을 가지러 부엌에 나왔다가 쓰레기 봉투를 나눠주러 온 동네 아줌마를 마주한다. 지영이는 머쓱해하며 칼을 슬그머니 뒤로 감춘다. 굳이 감춰야 할 이유는 없다. 부엌에 칼 가지러 나온 게 뭐 대수인가? 그런데 무의식 중에나마 지영의 마음 한 가운데는 살인 충동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그녀의 마음에 어두운 생각이 있었기에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칼을 슬그머니 뒤로 빼는 것이다.
이 사진은 영화 삭제 신 가운데 하나다. 비류와 온조는 단순한 쌍둥이가 아니라 몸이 붙어있는 샴 쌍둥이었다는게 처음 설정이었던 것 같다. 처음 설정을 샴 쌍둥이로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상상해 봤다. 우리는 종종 인간 관계에 있어서 밀착된 무언가를 찾고싶어 한다. 하지만 완전한 밀착은 서로에게 부담과 생채기만 줄 뿐이다. 나아가 완전한 밀착은 샴 쌍둥이처럼 서로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올바른 인간 관계는 완전한 밀착이 아니라 적절한 공간 확보다. 이것을 표현하려 했던 건 아닐까?
이 장면은 태희가 집에서 돈을 훔쳐(?) 가출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돈을 싸는 신문지에는 3천만 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정도로 많이 훔친 것 같지는 않은데, 여튼. "어딘들 청춘이 없으랴" 라는 신문의 글귀도 보인다. 태희는 지금 미지의 어딘가로 청춘의 도전을 하러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