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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도스또예프스끼 <꼬마 영웅, 1849>

by R.H. 201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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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나의 첫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

 

 

11살 소년인 ‘나'는 모스크바 교외 별장의 친척 집에서 이번 여름을 보내게 된다. 이  집의 주인은 가진 돈을 모두 다 써버릴 테다.. 하는 기세로 매일매일 손님들을 초대하고, 파티하고, 야유회를 하는데, 여기서 소년인 ‘나’는 어른들의 사랑, 슬픔, 그리고 비열함을 바라본다. 이 유년의 마지막 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한 강렬한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금발 부인'..... 자신감 넘치고, 유쾌하고 명랑하며, 사람들을 주목시키는 힘을 가진 그녀는 자신이 미인인 걸 잘 아는 여자다. 이런 여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살짝 도가 넘는 짓궂은 장난질을 한다는 점이다. 무례한 선에 닿을 듯 말 듯 한 지점까지 끌고 가는 짓궂은 장난..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유쾌하게 넘어가 주는 선에서 멈추는 장난.. 이 장난의 희생자는 바로 주인공인 ‘나'다. 

 

 

이 금발 부인에게는 절친인 M 부인이 있는데, 그녀는 금발 부인과 모든 면에서 대조되는 여자다. “창백하고 여윈 얼굴 위에서 정확하고 깨끗한 곡선이 빚어내는 나무랄 데 없는 아름다움과, 애수로 가득 찬 공허한 우울의 냉담함”을 가진 여자다. 말수가 적고 비밀스러우며, 슬픔을 휘감고 있는 여자다..  소년의 눈은 자꾸만 이 부인에게로 향하는데, 이 눈길을 제일 먼저 눈치챈 사람은 얄미운 금발 부인이다. 놀려 먹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 얄미운 핍박자 때문에 소년은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많지만,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걸 안다. 이런 부류의 여자가 또 의리 하나는 있다.

 

 

M 부인과 그녀의 남편 사이에는 뭔가 이상한 기류가 있다. 이를 금발 부인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금발 부인은 작정하고 M씨를 아작을 내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싸움이나 드잡이는 아니다. 사교계 스타일의 아작이다. 금발 부인도 웃고, M씨도 웃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웃고 떠드는 가운데, M 씨의 코가 납작해지는 그런 시츄에이션이다. 통쾌하다. 그래서 소년은 이날의 금발 부인을 묘사하면서 평소보다 두 배는 아름다워지는 기적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M씨는 어떤 사람인가. 겉 보기에는 멋진 신사다.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그러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대화를 주도할 줄 아는 사람..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자아 비대증 환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한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지속적인 게으름 때문에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계 덩어리가 있는, 어쩌다 남의 수고 덕택에 살이 찌게 된 종족... <중략> 그들은 무엇인가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겐 심장 대신 비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반대로 무엇인가 아주 심오한 것이 있다고 믿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 기품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는 가장 훌륭한 외과 의사라도 알 수 없을 노릇이다”

 

 

주인공인 ‘나'는 이 M씨를 묘사하는데 여러 장을 할애하는데, 이런 종류의 비열한 인간들, 위선적 인간들 모두에 대한 작가의 혐오감이 드러난다. “남을 우둔하다면서 멸시”하고, “형언할 수 없는 자만심을 과시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본능을 사용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자들,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겐 그들의 귀하신 몸이, 그들의 몰로흐와 바알 신이, 그들의 위대한 자아가 우선”인 자들, 그러면서 자신의 "기름기 도는 감정"에 스크래치라도 나면 복수심에 불타는 자들, "터지기 일보 직전인 거대한 자루처럼 비대"한 자아를 가진 자들...

 

 

이런 비계 덩어리 같은 심장을 가진 종족의 특성을 모조리 가진 위선자가 바로 M씨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다른 소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1849>에 나오는 알렉산드라의 남편과도 같은 사람으로 M씨와 M부인 사이의 숨 막힐 듯한 공기 역시 알렉산드라와 그녀의 남편 사이에 흐르는 억압적 공기와 동일하다.

 

 

그런데 M부인은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사랑하지만 이별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소년은 우연히 이들의 이별 장면을 숲에서 엿보게 된다. 남자는 이별의 편지를 그녀에게 남기고 멀리 떠나는데, 정신이 없었는지 M부인은 그 편지를 땅에 흘린다. ‘나'는 이 편지를 주워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그 이별 장면을 엿봤다는 걸 들킬까 봐, 그녀가 숲으로 돌아와 그 편지를 찾기를 바라며, 길바닥에 편지를 놓아둔다. 근데 이걸 어째.. 그녀는 별장을 향해 걸어가 버린다. 이도 저도 못 하고 소년은 그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둔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편지가 없어진 걸 눈치채는데.. 창백해진 그녀. 그 편지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공개된다면? 

 

 

진땀을 흘리는 와중에 별장 손님들은 피크닉을 떠나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부인은 숲으로 산책하러 가겠다고 한다. 찬스다. 소년은 그녀와 함께 산책길에 나선다. 기회를 엿보다가, 소년은 꽃다발을 만들어주겠다면서 꽃을 한아름 묶어서 그 안에 편지를 넣어둔다. 그리고는 풀밭에 드러누워 자는 척한다. 부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편지를 발견하고.... 별장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부른다. 그녀는 잠든 척하는 소년에게 키스하고는 떠난다. 부인이 떠난 뒤, 소년은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마을을 바라보며 “웅장한 풍경이 자아내는 달콤한 평화” 속에서 감정을 정돈한다. 이렇게 소년의 마지막 유년의 날이 떠나갔다...

 

 

추가////

 

이 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 소설답지 않게(?) 매우 서정적이고 순수하며 아름답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사회주의 서클 모임에 살짝 발 담갔다가 감옥에 갔을 때, 시베리아 유형 바로 직전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감정이 코너에 몰린 가장 힘든 시기에 쓴 가장 아름다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