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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19

이청준 단편 소설 <행복원의 예수, 1967> ‘행복원'이라는 고아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는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몹시 오줌이 마려워 뒷간을 가다가, 고아원의 ‘엄마'가 (’나'에게는 누나뻘인) 우물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본다. 보려 해서 본 건 아니지만, 어영부영하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숨어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목욕하고 있는 저 여자가 ‘나'는 안타깝다. 이건 또 무슨 도덕관념인지.. 그래서 인기척을 일부러 내버리게 되고,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엄마의 눈 밖에 난다. 고아원의 엄마는 매주 일요일이면, 원생 아이 중에 하나를 말끔하게 차려 입혀 교회에 손잡고 가는데, 뭐. 원생 아이들은 딱히 따라가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뭔가 돋보이는 일, 엄마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 일인 건 확실.. 2018. 9. 3.
이청준 중단편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별을 기르는 아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흔한 표어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종종 별 모양으로 대체될 정도로, 꿈과 별은 동일시되는 단어다. 별은 이곳이 아닌 저곳,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꿈 역시 그러하다. 현실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그렇다면, 꿈을 꾸면 우리는 행복할까. 희망을 품으면 과연 즐거울까? 아니다. 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괴롭다. 척박한 현실을 끊임없이 곱씹어야 하고,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비난해야 한다. 소설 속의 "그" 역시 그러하다. 천체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말 그대로 별을 보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꿈을 바라본다. 현실이 아닌 꿈과 희망을 바라본다. 하지만, 별을 보면 볼 수록, 구질구질한 현실이 오히려 돋보일 뿐이다. 그는 힘겨운 .. 2018. 9. 2.
박완서 단편집 2권 <겨울 나들이 외,1975~1978> 간단 감상평 남편으로부터 소외된 여자, 아들을 잃은 여자, 그리고 남편을 잃은 여자.. 상실과 고통, 헛헛함의 시간들을 견뎌온 이 세 여자가 손을 맞잡은 순간,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 함께 동행 하기로 한 그 순간...그 아름다운 순간.. 모성애, 부성애, 효심, 부부애 등등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허상, 물거품.그 물거품으로 만들어진 집.. ‘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쪼그라드는 서민들에 대한 스케치. 가난하고 천박하고 억척스러우며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 ‘빨갱이'라는 마법의 단어. 타인의 삶 산업화 시대의 심청이, 그 강인함에 대하여. 전쟁과 여자 비굴의 시대, 모멸의 시대, 능멸의 시대를 “쌍노메 베치'”라는 욕지기로 돌파하던 그녀... 무식하고 천박하며,.. 2018. 8. 9.
박완서 단편 <배반의 여름,1976> 어린 여동생의 익사를 경험한 '나'는 물이 무섭다. 이 사고 이후 부모님은 ‘나'에게 수영을 가르치려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나'는 물을 거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풀장에 집어넣는다. 나는 허우적거린다. 버둥거린다. 그러다 순간 알아챈다. 발이 땅에 닿고, 물은 가슴팍밖에 오지 않는다는 걸... 물이 나를 배반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물이 무섭지 않다. 아버지는 ‘낄낄낄' 웃는다.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다. 화려한 술 장식과 황금빛 단추가 달린 멋진 제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버지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크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가장 단단한 사람이고, 가장 근사한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직장에 데리고 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 2018. 8. 8.
박완서 단편 소설 <저렇게나 많이!,1975> 대학 졸업 후 부잣집에 장가가길 바라는 남자와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라는 여자.. 애인 사이였던 이 둘은 서로의 욕망을 잘 이해했기에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흘러 흘러,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이들.. 남자는 ‘다방에나' 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자는 코 앞에 있는 다방을 놔두고 먼 길 돌아 돌아 초라한 다방으로 들어서는데...다방 마담과 아가씨는 이 남자를 보자 반색 하며, 말 끝마다 ‘사장님, 사장님'하며 아양을 떤다. 남자가 자신을 과시할 만한 장소로 일부로 이 곳까지 끌고 온 것이다. 졸업 후 만난 대학 동기, 그것도 한 때 연인이였던 사이.. '질 수 없다'가 기본 감정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원했던 부잣집 귀부인이 되질 못 했다. 어디 그게 말처럼 .. 2018. 8. 7.
편혜영 단편 <소풍> <사육장 쪽으로> "여자는 내심 여행을 가는 게 귀찮으면서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W시에 다녀왔다는 자랑을 하고 싶어졌다. 아직 W시에 다녀온 친구는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그들은 짬을 내어 W시로 여행을 간다. 그런데 이들이 여행을 왜 가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여행자의 들뜸이나 설렘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행 전 들른 마트에서 물건을 챙기는 모습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하나 가득 카트에 담는 남자가 여자는 못마땅하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하여 겉옷을 고르는 여자를 남자는 잔뜩 인상 찌푸리며 쳐다본다. 자동차 안에서 나누는 이들의 대화도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들이 여행을 떠나는 시간을 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일이 끝.. 2017. 8. 18.
이청준 단편소설 <퇴원, 1965> 내가 앓고 있는 병은 무엇인가. 나를 병실에 가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병은 자아 상실이고, 나를 병실에 가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창문을 향한 기이한 상념.. 막연한 상념... 무엇을 생각하는가. 스스로는 기이하고 막연한 상념이라 하였으나, 아니다. 나는 창문 밖의 구체적인 세상을 생각한다. 탈출을 소망한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시계탑은 고장 나 있어, 시계침마저 떼어져 버려 있다. 저 고장 난 시계탑처럼 나의 시간은 멈춰있다. 병실이 아닌 자기 안에, 위궤양이 아닌 자아망실이라는 병을 가지고 "그렇게 시체처럼 여기 병실에 누워 있는 것이다." 윤 간호사는 나의 분신이다. 내 안의 목소리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멈춰진 시간 속에 널부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주는 자신 안의 목소.. 2017. 7. 15.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 1. 에서 작가는 소극적으로나마 모친살해를 한다. 정신의 탯줄을 끊어낸 것이다. 신화적이다. 에서도 작가는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여러 번 드러낸다. 그런데 나목에서 보여준 한결같은 증오심과는 달리 애증이다. 엄마를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아아, 지겨운 엄마, 영원한 악몽." 이라는 한숨이 엄마에 대한 모든 감정을 요약한다. 어휴.. 엄마란, 참.. 이런 느낌이다. 날 선 감정은 털어낸 것이다. 나목이라는 소설, 즉 상상 속에서 엄마의 죽음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뤄낸 것이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나마 감정의 찌꺼기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붙들려 있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 2017. 2. 27.
박완서 <나목, 1970>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그가 필요해" 엄마는 일상이다. 옥희도는 예술이다. 옥희도의 아내는 아름다움이며, 조는 관능이다. 경이는 일상(엄마)을 증오한다. 예술(옥희도)을 소망하고, 관능(조)을 바래보고, 아름다움(옥희도의 아내)을 사랑한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옥희도라는 남자가 아니라, 예술이다. 그녀는 예술이 필요하다. 회색빛 엄마, 미래를 꿈꾸지 않는 엄마, 현재를 살지 않는 엄마, 과거에 붙들려 있는 엄마,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산다는 식의 엄마. 그리고 지긋지긋한 일상이 있는 고가.. 그녀는 탈출하고 싶다. 탈출해야 한다. 이 죽어버린 집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일상으로부터, 그리고 엄마로부터... 경이는 과거의 엄마를 사랑했다. 생기 넘치는 오빠들과 흐뭇한 미소로 자식들을 바라보는 엄마. 이 .. 2017. 2. 23.
박완서 단편집 1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1~1975> 간단 감상평 뚫을 수 없는 계급의 벽 권태로운 삶. 그 지긋지긋한 팔자 좋은 삶. 조용히 녹슬어가는 삶.. 나를 짓누르는 고통. 윤리 사상 출신.. 이 모든 제약. 이 모든 족쇄의 중압감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망. 가슴 속에 체증처럼 고인 억울함과 고통을 토해내기 위해 나는 글을 쓰노라.. 하얀 종이 위에 문장이라는 검은 눈물을 흘리노라.. 기름진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여 기개 넘치던 시대의 비판자, 그 "고전적인 욕쟁이" 역시 기름때에 찌들어버렸다. 이런 그를 본다는 건 씁쓸함일까. 분함일까.. 도시 중산층에 대한 역겨움. 그들의 웃음소리를 뭉개고 싶다.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싶다. 도시에서 튕겨 나간 자는 그 복수심을 품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구나. 가난한 삶에 대해 구구절절 널어놓는 엄마.. 랩 하는 줄.. 2017.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