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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

이청준 단편소설 <퇴원, 1965> 내가 앓고 있는 병은 무엇인가. 나를 병실에 가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병은 자아 상실이고, 나를 병실에 가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창문을 향한 기이한 상념.. 막연한 상념... 무엇을 생각하는가. 스스로는 기이하고 막연한 상념이라 하였으나, 아니다. 나는 창문 밖의 구체적인 세상을 생각한다. 탈출을 소망한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시계탑은 고장 나 있어, 시계침마저 떼어져 버려 있다. 저 고장 난 시계탑처럼 나의 시간은 멈춰있다. 병실이 아닌 자기 안에, 위궤양이 아닌 자아망실이라는 병을 가지고 "그렇게 시체처럼 여기 병실에 누워 있는 것이다." 윤 간호사는 나의 분신이다. 내 안의 목소리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멈춰진 시간 속에 널부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주는 자신 안의 목소.. 2017. 7. 15.
오로네 드 발자크 <골짜기의 백합, 1836> 모르소프 백작은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몰락 귀족이다. 게다가 가진 재산도 없는 무능력자다. 대혁명 이후 긴긴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지 않은 그는 왕정이 복고되어 관직을 하사받고도, 정무감각 부족으로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백작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의 아내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트)이다. 그녀는 가난한 남편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못난 남편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다. 그런데 모르소프 백작은 이런 그녀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고마워하긴커녕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사람을 들들 볶는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훈장질뿐이다. 뭘 진짜로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꾸짖음으로써 자신에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전형적.. 2017.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