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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6

비밀은 없다(2016) - 21세기에 다시 쓰는 아가멤논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군대는 여신의 분노로 인해 바람이 불지 않아 트로이로의 출정을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전염병까지 번지면서 진영은 어수선해지고, 아가멤논의 리더쉽은 의심받는다. 하여 아가멤논은 딸과 아내를 속여 진영으로 데려와 딸을 희생 제물로 삼아,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부하들의 신임을 얻어 출항한다. 이에 왕비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치를 떨며 분노하고,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근데 자기 딸을 희생삼아서까지 트로이로 전쟁을 하러가야만 하는 걸까? 그놈의 대의라는 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트로이와의 전쟁 명분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이건 어거지다. 모두가 안다. 납치가 아니라, 헬레나와 파리스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까 .. 2016. 10. 29.
박완서 단편 <환각의 나비> 어머니는 아들네 집에 가고 싶다. 옛날 사람에겐 아들만이 자식이다. 제아무리 딸과 사위가 정성을 들여도, 외손주들이 살갑게 대해도 그녀에게 딸네 집은 남의 집이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네 집에 산다는 건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천덕꾸러기라는 의미다. 어머니는 하여 자기 집, 즉 아들네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며느리가 달가워할 리 없다. 치를 떠는 며느리와 귀찮아하는 아들.. 이들의 냉정한 태도에 맏딸은 어머니를 모셔오지만, 결국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쩌겠는가.. 옛날 어머니에겐 아들만이 자식인걸.. 교묘한 형태로 어머니는 자식에게 버림받았다. "그 집에는 느낌이 있었다." -본문 중- 위성 도시의 재개발 지역, 도시 속에 섬처럼 떠 있는 동네에 버려진 집이 하나 있다.. 2016. 10. 23.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이것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다. 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즉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다. 스스로를 확신하는 사람이다. 근데 이게 심각하게 지나친 사람도 있다. 자아 비대증에 걸린 미치광이 히틀러 같은 사람 말이다. 버트는 자신이 미치광이 말더듬이 왕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괴로워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미치광이는 절대 말을 더듬지 않으니까. 그러니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약간 미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의 흥과 합일하든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휩싸이든 어쨌든 뭔가 정상적인 것을 좀 넘어서서 미친 듯이 떠들고 난 뒤, 정신을 차려보면, 어 내가 말을 이렇게 잘했나 싶은 경험들.. 2016. 10. 15.
박완서 단편 <꿈꾸는 인큐베이터, 1991> 주인공은 남 보기에 그럴듯한 삶을 산다. 중소건설업체 사장의 부인, 세 아이의 엄마, 별문제 없는 평온한 가정의 전업주부. 그야말로 바른 생활 교과서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도시 중상층 가정이다. 그녀가 요즘 즐겨보는 영화는 이다. 아침 드라마같은 부부싸움이 주된 내용인 막장 드라마다. 딱, 과 같은 류의 이야기다. 증오로 얼룩진 부부 싸움. 그 싸움의 원인은 별 것도 아닌.. 이런 시시껄렁한 막장 드라마는 그녀에게 은밀한 즐거움과 카타르시를 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런 증오의 이야기, 가정 파괴 이야기에 매료되었는가. 자신 안에 켜켜이 쌓인 증오 때문이다. "하늘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실패할 리 없는 방법이라는 게 여야 살해를 전제로 했으니까요.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과학적이고 감쪽같이 태아가 단지 .. 2016. 10. 13.
쇼생크 탈출 (1994) : 나를 자유롭게 한 것은 나 자신이지 억울하다. 사는 게 억울하다. 누가 나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운 것도 아니건만, 뭐가 그리도 억울한 걸까.. 현실에 발목 잡힌 삶. 일상의 굴레에 갇힌 삶. 누가 날 가둬둔 것도 아니건만, 삶은 왜 이리도 갑갑한 걸까.. 그래서 우리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곤 한다.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보길 희망한다. 자유롭게 선을 가로질러 가보길 희망한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난다 한들 별수 있겠는가. 그나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나마 지키는 게 낫지.. 우리는 금세 희망을 거두고, 현실의 감옥으로 복귀한다.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어. 이 안에선 아무 쓸모가 없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아." 사람들은 말한다. 희망은 위험하다고. 희망은 고문이라고. 지옥에는 있는 것은 절망이 아니.. 2016. 10. 8.
막심 고리키 <어머니, 1906> "매일 변두리의 노동자 부락에서는 연기와 기름 냄새가 풍기는 공기 속에서 공장의 사이렌이 울린다." -본문 중- 칙칙한 하늘, 메케한 공기, 반복되는 노동, 지친 나날들. 짓밟히고 착취당하는 삶. 발길질 당하는 삶. 그들은 쌓여만 가는 분노를 해소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을 때리는 사람에게는 울분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들은 거리에서, 싸구려 술집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욕설을 하고 주먹질을 해대고, 집에 와서는 마누라를 두드려 팬다. 그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잔인한 삶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일생동안 나는 단 한 가지 것을 생각해왔네.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면 방해받지 않고 하루를 조용히 보낼 수 있을까, 눈에 띄지 않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네." -본문 중- 닐로브나가 바라는 것은 그.. 2016.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