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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5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이번엔 머릿속으로 이렇게 되뇌어봐. '난 여자고'는 사실이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네 것이고 사실인 거야" 미대생 언니와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 이야기. 하지만 관객이 10대가 아니어도, 여자가 아니어도, 프랑스인이 아니어도, 아델이라는 인물과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성장하기 원하는 인간, 더이상 "작기" 를 거부하려는 인간, 뛰어넘으려는 인간. 이것은 비단 아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지고 희망이고 욕망이다. 하여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관객의 것이 되고, 사실인 것이다. 이제 아델의 이야기,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다' '너무 작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작아선 알 될 상황이야.... 작기를 거부해야 하는데 그날이 목숨을 잃는 날이기도 하지." 아.. 2016. 9. 30.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 내가 나를 속인다 우리 뇌의 제1 목표는 서바이벌이다. 살아남은 다음에야 정의든 윤리든 뭐가 되었든, 더 높은 단계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뇌는 우리를 속인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왜곡하거나 지워버리고, 행복한 기억은 부풀려 놓는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작동이 안 되는 급박한 경우도 있다. 이땐 미쳐버린다. 미친다는 건 비상 착륙 장치 혹은 사이드 브레이크 같은 것이다. 제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박살나지 않고, 일단 살아남는 데 필요한 장치 말이다. 테디가 미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가진 그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선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신병원 의사는 이 기억을 악착같이 되돌려 놓으려 한다. 정신병을 치료.. 2016. 9. 24.
박완서 단편 <그 가을 사흘 동안>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산부인과 의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낙태만 하는 의사다. 그녀 자신이 강간 피해자였고, 원치 않는 아기를 낙태한 경험이 있다. 하여 그녀는 스스로를 다른 여성들을 고통에서 구원하는 해방자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방되어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사흘 후면 그녀의 낙태 전문 병원은 문을 닫는다. 세월이 흐르고, 동네도 변하고, 그녀도 이젠 은퇴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다. 낙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태아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 가을 사흘 동안 그녀는 이 소망이 이.. 2016. 9. 15.
오로네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1834> 젊은이의 양지 - 외젠 라스티냐크 외젠은 예전 한국 드라마 단골 주인공같은 인물이다. 가족들의 온 기대를 걸머지고 시골에서 상경한 대학생. 소 판 돈으로 대학 보내는 뭐 그런.. 해서 그는 경계인이다. 그의 현재는 시골과 도시의 사이에 있다. 화려한 사교계를 기웃거리는 구질구질한 하숙집의 가난한 법대생. 그는 "찌든 가난과 권태, 죽어 가는 노인과 공부에 얽매인 한창 때의 젊음, 이런 것뿐" 인 이 끔직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동시에 시골의 인간이었던 그는 근면 성실한 삶, 정직한 노동의 삶을 여전히 희망하기도 한다. 그는 루비콘 강 앞에서 욕망이 질주하는 삶 속으로 달려들어갈지 말지 결심해야 하는 경계의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가 바라는 성공은 판검사 따위가 아니다.. 2016. 9. 10.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2004> 배고프다, 갈증이 난다... 먹어도 먹어도, 마셔도 마셔도 가시지 않는 "초월적인" 배고픔과 갈증. 채워지지 않는 욕망, 갈망, 공허함.. 은 음식에 대한 허기짐, 물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의 처음 몇장만 들춰봐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 뻔히 알 수 있다. 작가의 최종 허기짐과 갈증은 결국 이야기, 책..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것이니까. "배고픔, 이건 욕망이다. 이것은 열망보다 더 광범위한 열망이다. 이것은 힘으로 표현되는 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약함도 아니다. 배고픔은 수동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 그는 뭔가를 찾는 사람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등단작 은 문학의 신내림에 대한 이야기다. 신병이 나면, 무당이 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듯이, 문학의 신이 강림하면 글을.. 2016.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