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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카프카 <변신,1915>

by R.H. 2017. 9. 16.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침에 눈 뜨니 벌레로 변해버렸단다. 밑도 끝도 없는 시작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단서도 주지 않고 바로 소설이 진행된다.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났는데, 그레고르는 출근 기차 놓치는 걱정부터 한다. 지금 그런 걱정 할 때입니까.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튼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들이 방에서 나오질 않으니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 지배인까지 가정 방문하여 꿍시렁거린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열쇠공을 부를까 어쩔까 하는 와중에 그레고르는 가누기 힘든 몸을 꿈틀거려 문을 여는데.. 충격과 공포!! 가족들과 지배인은 놀라자빠지고.. 아버지는 서둘러 이 벌레를 위협하여 방으로 몰아넣는다. 이제 그레고르의 감금 생활이 시작된다.



방에서만 생활하게 되자,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레고르는 지난 일들을 회상해 본다. 아버지의 사업 파산한 후, 지난 5년 동안 뼈빠지게 일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자신이 뿌듯하다. 여동생은 10대 소녀고, 어머니는 천식이 있고, 아버지는 사업 실패후 생활 전선에 나갈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아버지는 몸도 늙었고 힘도 없으시단다. 딱히 병이 있는 건 아닌데, 항상 피곤해서 침대 아니면 소파에서 잠옷 차림으로 지내셨다. 걸어다닐 때도 지팡이 짚으며 힘없이 느릿느릿 걸어가시던 아버지였다. 이런 형편이니 그레고르가 이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자신이 대견했다. 가족들은 그가 첫월급을 타왔을 때 얼마나 환호를 했던가.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는 것에 무뎌지고 당연하게 생각하기까지 했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이만한 집에서 이만한 살림을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자신이 자랑스럽다. 아, 그 시절은 이젠 다시 오지 않겠지..



그나저나 옛날 일은 옛날 일이고, 그레고르는 앞으로 가족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자신이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렸으니 이제 가족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여동생을 외국 음악 학교에 유학 보내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인지.. 근데 이 사람아, 지금 자네가 그럴 걱정할 때인가. 댁은 벌레로 변했다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노후를 대비해서 꼬불쳐놓은 돈이 좀 있으시답니다. 여기서 소소한 이자도 나온답니다. 어허, 이런 이런. 여행사 영업 사원인 그레고르는 일이 지긋지긋했지만, 아버지가 사장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 이제 몇 년만 더 일하면 아버지 빚을 다 갚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아버지 빚을 갚느라 아들은 원하지도 않는 일을 써가 빠지게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빚은 아들이 갚고 있고, 아버지는 몰래 돈을 꿍쳐놨다니.. 이거 완전 배신감 느낄 일이건만.. 그레고르는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게 된 지금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돈을 따로 챙겨놓은 게 오히려 잘 하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게 속았다는, 이용당했다는 느낌에 빠지는 걸 방어하려는 자기합리화인건지 뭔지.. 아 답답이, 답답이..



게다가 일년 365일 피곤하고 힘없으시다던 아버지가 은행 경비로 취직을 하셨다. 뿐만 아니다. 여동생이 그레고르 방 청소할 때면 그레고르는 그 흉측한 몸을 숨기곤 했는데, 여동생이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려 하자, 그레고르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은 놔두라는 의사표시를 하고 싶어서 그 흉한 몸을 드러낸다. 그 몸을 본 여동생과 어머니는 기절초풍하고, 퇴근한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레고르를 향해 사과를 냅다 던진다. 항상 피곤하시다던, 걸음도 제대도 못 걸으시던, 목소리마저 힘이 없으시다던 그 아버지가 맞기는 한 것인가. 지난 5년간 골골해하던 것은 생활 전선에 나가기 싫어서 핑계를 댄 것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레고르가 자기 몸을 좀 드러낸 것이 저렇게 뚜드려 맞을만한 일인가? 



돈을 벌어올 땐 이 집안의 훌륭한 자식이었지만, 돈을 더이상 벌지 못하고,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레고르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꼴도 뵈기 싫은 존재다. 방구석에서 나오는 것만 봐도 화가 치미는 존재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부위가 염증이 생겨 한달을 고생하다가 그레고르는 죽는다. 



아들이 죽었다. 아무리 벌레로 변해 버렸다지만, 오랫동안 이 집안을 먹여 살렸던, 아버지의 빚을 갚아나가던, 그 아들이 죽었다. 그래도 자식이니까 대성통곡 한번쯤은 나올법하건만...가족들은 홀가분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 을 생각해본다. 가족.. 과연 뭘까. 내가 만약 집안 경제에 도움 되지 않는 식충이라면.. 어느날 내 몸하나 가누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밥만 축내는 밥벌레로 변해버린다면.. 카프카의 <변신>은 모성애, 부성애, 형제애, 가족간의 사랑,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단어에 속아 넘어가는 세상의 모든 그레고르들, 심청이들을 위한 소설이다.